'윈-윈'식 통신산업 재편 바람직대담 최영규 정보통신부장 ykchoi@sed.co.kr
"현재의 통신산업 구조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발전이 어렵습니다. 통신산업 전반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통해 업계 전체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박운서 데이콤 부회장은 정부의 통신산업 3강구도 체제와 이를 위한 비대칭 규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유럽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면서 비대칭 규제를 실시했으며 미국도 시내전화 사업자는 장거리전화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일본은 NTT를 동서로 쪼개 시장점유율을 100%에서 76%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 박 부회장은 "비대칭 규제는 모든 나라가 하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다만 박부회장은 "정부가 이를 통해 3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개념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가지 해법으로 업계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 자율적인 논의를 통해 서로의 공감대를 넓혀가다 보면 선의의 경쟁구도가 잡혀지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고있다.
그래서 최근 박부회장은 한국통신 이상철 사장을 만났다. 꼭 데이콤 문제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정보통신 시장의 상황에 대해 이상철 사장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부회장은 "이상철 사장과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한통과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현재 시장구조가 갖고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 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앞으로 실무자급의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부회장은"현재 데이콤ㆍ두루넷ㆍGNG네트웍스ㆍ드림라인 등의 업체들이 모여 중복 투자ㆍ덤핑 공세 등 과잉 경쟁을 지양하고 서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귀띔했다.
통신산업 3강체제와 관련 박부회장은 "하나로의 시내전화, 데이콤의 시외ㆍ국제전화, 파워콤의 망을 합치면 유선이 되고 여기에 LG텔레콤의 무선을 넣으면 유ㆍ무선이 통합돼 3강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하나로와 데이콤이 심각한 적자구조인 상황에서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LG텔레콤이 3강의 주축이 되는데 걸림돌로 지적되는 출자총액제한 문제도 거론했다. "증거는 없지만 정부가 권유해서 LG가 하나로에 투자, 주당 6,900원에 샀는데 이제 와서 3,000원대인 주식을 팔라고 하면 기업하지 말라는 소리나 같다"고 항변했다.
"시장성이나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한 투자를 한데다 직원들의 노동생산성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합리한 시장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박 부회장은 현재 데이콤이 겪고있는 시련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박 부회장은 우리 통신산업이 한국통신에 집중, 한통이외의 사업자는 자생력을 키우기가 무척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통신산업 구조를 빗물만 받아 농사를 지어야 하는 천수답에 비유했다. 산기슭의 맨 위에 있는 한국통신이 자기 논에 물을 다 채우고 나면 선별적으로 아래쪽 사업자들에게 물을 대주기 때문에 한통에서 물을 안대주거나 조금만 주면 아래에서는 농사를 지울 수 없다는 것.
데이콤은 지난 96년 시외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모두 3,700억원을 투자하고 3,100억원의 누적적자를 냈다.
여기에는 한통에 지불하는 접속료가 매출의 53%로 외국의 20~30%에 비해 너무 높은 것이 주요인이라는 게 데이콤의 주장이다.
또 한통이 가입자망과 LM(유선무선)사업을 독점하는 등 불공정 경쟁체제가 계속되고 있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출은 기껏 5%씩 오르고 있는데 접속료는 35%씩 인상됩니다. 인터넷폰 등이 확산되면서 시외전화 요금은 사업 시작때보다 오히려 내려갔다고 봐야 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데이콤은 4월까지 1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1ㆍ4분기에 52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4월에는 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 박부회장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에는 1,200억원 가량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데이콤이 이처럼 흑자기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기는 하나 박 부회장 취임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결실을 맺고있기 때문이다.
누적적자로 허덕이던 한국중공업을 회생시킨 박 부회장의 신바람 경영이 점차 데이콤 직원들에게 접목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박 부회장은 데이콤의 비전을 3ㆍ3ㆍ3으로 정했다. 앞으로 3년에 걸쳐 경비를 30% 줄이고 이익을 매출액 대비 3% 내자는 것이다.
박부회장은 부임 이후 계속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형편없는 회사 실적을 그대로 공개하고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그는 임원들 헬스클럽 회원권을 회수하고 화장실에는 재생용 까만 휴지를 쓰도록 하는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박부회장은 데이콤 부임 이후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과거 공직사회에서는 워낙 강하게 밀어부친다고 해서 '타이거박'으로 불렸는데 요즘에는 세븐투일레븐(7 to 11)으로 바뀌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11시까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박 부회장은 최근에 처음으로 일요일을 쉬었다. 늦게 배운 골프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데이콤 경영정상화 이전에는 절대 골프채를 만지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아날로그 사회에서 일평생을 보내다가 첨단 디지털 회사의 키를 잡았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세상이 바뀌는 흐름은 알고 있다"며 디지털 사회에서의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근대화 시절에는 모든 기술을 일본에서 받아왔지만 지금은 일본을 넘어서 살고 있습니다. 일본ㆍ중국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스피디하며 한글을 갖고 있는 우리는 바뀐 세상에 맞는 포텐셜(잠재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이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밝게 보는 그는 마지막 인생을 데이콤의 경영정상화 나아가서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내 비치는 열정을 보였다.
/정리=한기석기자 hanks@sed.co.kr 사진=김동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