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가의 신생 가전 업체들이 한국, 미국 등으로부터 부품을 수입, 이를 조립해 파는 방법으로 저가 제품을 대량 생산해 전세계 가전 시장을 빠르게 재편해 나가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중국, 동유럽, 남미 등의 중소 가전 업체들이 직접 디자인과 기술력을 개발하는 대신 선진국들의 부품을 이용한 저가 제품을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일본, 한국 등 선두 업체들도 제품 가격을 낮추는 등 이 같은 조립 제품이 최근 가전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가격 경쟁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동안 중국내에서 저가 TV판매 등에 주력해 왔던 샤화센시시퉁(Xoceco)은 최근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부품을 이용해 대형 평면 TV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 시장은 TV시장의 선두 업체인 소니도 최근에서야 대량 생산에 돌입한 첨단 산업. 그동안 샤화는 내수 시장에 주력했지만 최근 델과 HP가 자사의 브랜드로 샤화의 평면 TV를 미국과 해외 시장에서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수출에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의 휴대폰 시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해외 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달받아 만든 중국제 휴대폰은 불과 2년만에 내수 시장의 40%를 잠식했다. 최근 모토롤러가 TV시장 복귀를 위해 손잡은 홍콩 가전 회사역시 타이완과 한국에서 부품을 조달 받아 평면 TV를 생산하는 조립 업체.
이처럼 저가 조립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소니, 필립스 등 선두 업체들의 가전 부문 수익폭은 크게 줄고 있다. 소니의 경우 지난 3월 마감 회계 연도 가전 부문 수익률은 0.8%에 불과했다. 6년 전만해도 소니의 가전 부문의 마진율이 7%에 달해 이 업체의 대표적인 캐시 카우 역할을 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에 따라 소니는 최근 2006년까지 고용의 13%, 제조 공장의 30%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필립스 역시 수익 향상을 위해 올해 대형 가전 제품 부문의 지출을 4억 6,600만 달러 줄였다. 다른 업체들도 수익을 맞추기 위해 중국 등으로 이전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
신문은 이 같은 현상이 20년 전 컴퓨터 대중화단계의 초기 상황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컴퓨터 하드웨어의 표준화가 이뤄지면서 인텔의 반도체,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컴퓨터 조립 업체들이 대거 등장, 컴퓨터 가격 하락이 급격하게 진행됐다.
첨단 가전 제품시장에서도 제품 표준화의 혜택을 입은 저가 조립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1,000달러를 호가했던 DVD 플레이어 가격이 30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데 3년이 걸린 반면 이보다 진전된 DVD 녹화기가 비슷한 속도로 가격이 떨어지는데는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는 등 전자 제품 가격 하락에 가속이 붙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윤혜경기자 ligh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