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령화의 늪'에 빠진 日 국민연금


지금 일본에서는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인 국민연금(한국의 국민연금과는 차이가 있음) 개편 문제로 뜨겁다. 노인인구가 급증해 지급해야 하는 연금은 많은데 이를 충당할 정부 재정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 연금제도는 독일 모형에서 유래했다. 비스마르크형이라 불리는 독일 연금제도는 전형적인 소득비례 연금으로 '많이 부담하고 많이 받는' 구조가 특징이다. 그러나 저성장 고착화,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인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제도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과 일본 두 나라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노후소득보장제도 구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듯하다.

비스마르크형 연금제도의 원조인 독일은 높아진 사회보장 부담으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지자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해결사로 나선 사람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한 슈뢰더는 '어젠다 2010'을 앞세워 연금 급여를 대폭 삭감하는 대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개혁은 슈뢰더 개인에게는 참담한 결과를 안겼다. 전통적인 지지세력이던 사민당이 등을 돌려 정권은 우파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독일이 국가 차원에서 챙긴 반대급부는 엄청나게 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도 독일의 실업률이 오히려 감소한 것이 단적인 예다. 경제위기 이후 독일의 국가경쟁력이 어떻게 높아졌는지 궁금했던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포스트지에 독일 관련 특집기사를 실었다.

지출액 50% 재정서 감당도 버거워

장수대국이면서도 이미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의 대응은 독일과 반대로 가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시절부터 추진했던 일반국민 대상의 후생연금(소득비례 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통합 운영에는 소극적인 반면, 노후불안 해소 차원에서 연금 지급 재원 전부를 국가재정으로 충당하는 최저보장연금제도 도입에는 적극적이다.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국민연금은 보험료 수입만으로 지출액을 감당하지 못해 2009년부터는 지출액의 50%를 세금으로 조달하도록 돼있는데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일본 정부가 연금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2009년부터 임시로 끌어다 쓴 특별회계 잉여금(매장금)은 이미 지난해 말 고갈됐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재원조달 방법은 현재 5%인 소비세율을 당장 올리거나, 나중에 인상해 갚겠다는 조건으로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최저보장연금은 일정 소득 이상 노인에게는 지급액(1인당 월 7만엔 수준)을 깎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지만 국민연금과 달리 재원 전부를 국가재정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소비세 7% 세수'에 해당하는 재원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전체 소비세(세율 5%) 세수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 제도다. 수혜대상의 폭과 급여수준이 일본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도입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은 이유다.

일본이 저출산ㆍ고령화로 이처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일까.

우리도 연금체계 개편안 도출해야

우리가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 막대한 규모의 국내외 자산을 축적한 일본도 넘기 버거운 인구 고령화라는 거센 파고를 헤쳐갈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한 빈곤 노인들의 노후소득 안전망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지난해 국회 차원의 연금 개편 논의가 있었음에도 의미 있는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했다. 우리 앞에 놓여질 초고령사회라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노후소득보장 문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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