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반성장의 길 모색한다] 전문가 좌담

"기술협력, 대기업도 시혜 아닌 공동개발이라는 인식 필요"
펀드 조성·조인트 벤처·공모전 등 다양한 제도 확대해야


지난 2일 서울경제신문이 '새로운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한다' 라는 주제로 실시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허염(왼쪽부터)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사장,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김기찬 한국중소기업학회장(가톨릭대 교수), 배종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김상용기자

국내용 아닌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 접근… 공정거래 넘어 창조적 상생 모델 마련 시급

시행착오 줄이기위해 기술개발 DB 만들고 실패 책임 분담하고 관용의 문화도 정착을





◇ 좌담회 참석자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사장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김기찬 한국중소기업학회장(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활동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술협력으로 상생협력의 단계를 높여야 합니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들이 동반성장의 패러다임을 현금 등 일차적인 지원에서 기술협력 등으로 확대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일 '새로운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한다'라는 주제로 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기술로 가치를 창출하고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새로운 동반성장의 문화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기찬 한국중소기업학회장과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이사 사장,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등이 함께 한 이날 좌담에서 참석자들은 대기업의 동반성장 활동이 기술로 급속히 옮아가고 있는 현상의 배경과 향후 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동반성장의 기본가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산업 고도화와 국가경제를 성장시키자는 것이며 기술협력은 그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찬 한국중소기업학회장(사회)=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진흥ㆍ지원의 초점은 한계기업을 정상기업으로 바꾸는 데 있었다. 이제는 정상기업을 어떻게 글로벌 기업, 혁신기업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맞출 때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기술 중심의 협력은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배종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과거 우리나라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인건비 등 생산원가를 줄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기업은 앞으로 경영활동 앞부분의 기술개발, 뒷부분의 마케팅에서 경쟁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즉 기술로 가치를 창출하고 마케팅으로 가치를 회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기 협력도 이제 이 같은 기술 분야에서 일어나야 한다. 기술협력 분야는 이에 따라 협력의 핵심이다. 아울러 협력은 서로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우선 대기업은 필요한 기술을 모두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 기술협력은 개발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물론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또 대기업이 핵심 중소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지속성장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잡는 측면도 된다. 기술개발 협력은 윈윈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떻게 하면 납품단가를 줄일 것인가 하는 지금까지의 초점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술개발 협력의 모델을 만들고 정책적으로 집중할 때다.

▦사회=중국 칭다오에서 5,000개 기업 중 살아남는 기업은 500개다. 살아남는 500개 기업은 디자인과 연구개발(R&D)을 다 한다. 죽어가는 4,500개를 보면 제조만 한다. 가치사슬상 기업이 제조만 해서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없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를 위해 뭐가 필요한가.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대표=기업이 크든 작든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힘들다. 중소기업이라기보다는 전문기업이 돼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으로 특출해야 한다.

대기업과의 관계설정은 이를 위해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반도체 관련업체인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 선두 업체인 삼성과 거래한다는 점은 일종의 축복이다. 과거에 제일 어려웠던 상품기획도 세계 1위 업체를 고객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드맵이 나온다. 조준점을 명확히 한 후 공급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스스로 1류 부품을 만들게 된다.

▦사회=그렇다면 현수준의 대중기 기술협력 현황은 어떤가. 잘 안 된다면 왜 그런가.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기술협력을 경시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은 없다. 다만 기술이 실제 상품화되는 것은 몇 건 되지 않는다.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평균 5.7건의 기술개발을 시도하는데 성공하는 비율은 57%, 제품화해서 사업화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37%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로 기업들은 기술개발 자금을 꼽는다. 두번째가 인력확보, 세번째가 사업화자금 부족이다. 결국 돈과 사람이다. 정부가 지원하지만 외부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모든 기업의 역량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 거래업체들은 다행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협력이 문제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최근 대중기 기술협력 유형들이 늘었다. 기술구매와 위탁연구, 외부기술 일시 사용, 컨소시엄 구성, 기술전략적 펀드 조성 등 다양하다. 동반성장 측면에서 본다면 기술협력 방안을 고도화해 창조적인 동반성장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동반성장은 기본적인 거래질서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 협력관계 문화 조성은 흔들렸다. 공정질서, 즉 가격이나 불공정행위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동반성장으로 포장된 불공정거래 근절을 넘어 기술협력으로 가는 방법론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기본가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산업고도화를 이루고 국가경제를 성장시키자는 것이다. 기술협력은 그 핵심이다. 대기업들이 창조적으로 방법론을 만들 때다. 그게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사회=대중기 기술협력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은 어떤 게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허 대표=기술개발은 대부분 90%를 이루고도 마지막 10%가 안 돼 무산된다. 대기업과 일단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면 개발을 마무리할 수 있다. 문제는 대기업하고 거래관계를 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시도가 삼성전자의 혁신기술협의회다. 우리 회사는 신설법인이었는데 혁신기술을 가진 업체를 뽑을 때 23개 회사에 선정됐다. 그것을 기회로 시작됐다. 이후에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1년에 2회 회의를 주재하며 각 업체의 기술활용 방안을 살피고 전시회를 열어 삼성 측 개발 임직원들이 하루 종일 본다. 아울러 CEO부터 구매총괄ㆍ기술총괄이 모두 와서 경영진의 의지와 실무진의 업무가 조화를 이룬다. 결국 삼성과의 거래를 통해 지난해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면 95%가 됐을 때 5%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그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는 기회가 확산돼야 한다.

▦사회=학문적인 기술협력 사례 연구가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나.

▦배 교수=신흥정밀의 사례가 있다. 스마트3D TV에 들어가는 베젤을 스테인리스로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의 박사급 인력 15명과 연합팀을 만들어 결국 성공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삼성전자가 TV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신흥정밀도 매출이 급성장했다. PSK도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회로를 식각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은 공동개발을 통해 설비투자비를 줄일 수 있고 PSK는 매출이 늘어난다. 앞으로는 라인 규격을 정하는 등 함께 가는 관계가 된다. 특히 중소기업 입장에서 장비 공동개발은 판로뿐 아니라 삼성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등 개발과정 자체에서 기회가 된다.

독자개발ㆍ공동개발 등 형태를 떠나 중요한 것은 실력과 실력에 대한 상호신뢰다. 능력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면 성과가 나고 동반성장으로 이어진다.

▦허 대표=첨언하자면 대기업과의 거래경험은 글로벌시장으로 진출할 때 든든한 거래기록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실질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정 사무총장=여러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먼저 정부와 대기업이 기술개발을 위한 펀드를 조성한 뒤 과제를 공모해 성공하면 구매하는 구매조건부 사업이 있다. 현재 1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4,000억원이 조성돼 있다.

두번째는 조인트벤처다. 연구소나 대학이 가진 기술로 창업하려는 이가 있을 때 대기업이 심사를 통해 사업화를 지원한다. 전북대의 나노포라라는 곳은 코오롱과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세번째는 삼성전자의 신기술 개발 공모전이다. 대부분 동반성장펀드는 융자 형태인데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조건 없이 출연했다. 이를 협력관계 여부에 상관없이 중소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최대 10억원까지 지원을 받는다. 올해 1차 4개 기업이 선택돼 개발비 지원을 받았다.

네번째는 포스코의 형태다. 이는 창업자에게 기회를 줘 괜찮으면 대기업이 육성하는 창업특화 기술협력이다. 포스코가 현재 500억원을 조성했다.

마지막으로 항공우주산업의 모델로 모기업이 자기 회사의 기술인력을 협력업체에 파견한다. 파견인력의 인건비 70%는 모기업이 부담한다. 30%의 비용을 받으면 모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아 또 육성하는 모델이다. 이처럼 대기업이 회사의 여건에 맞게 계속 새로운 형태를 만들면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배 교수=삼성의 경우 실패했다고 해서 중소기업들이 지원금을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앞으로 지원 대상이 점점 비거래 업체 등으로 확산되면 의미가 크다.

▦사회=기술협력 확산에 필요한 점이 있다면 예기해달라.

▦정 사무총장=총수들의 기술협력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기술협력을 통한 생태계 조성을 의식적으로 챙겨야 한다. 지시를 하는 경우에는 지시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등 총수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또 기술협력 과정에서 대기업이 시혜를 베푼다는 관점이 아니라 공동개발을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내용이 아닌 글로벌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생각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 대기업이 1차 기업들의 역량을 높여 2, 3차까지 상위거래 업체와 기술협력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대기업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1차 협력사에 대해 관심을 독려하고 1차 협력사들이 2, 3차에 기여하는 역할을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것들이 이뤄질 경우 세계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배 교수=새로운 기술개발은 실패 가능성도 크다. 실패 리스크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삼성전자 신기술 개발 공모전의 경우 실패해도 괜찮다. 결국 실패를 분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경우 현재 중소기업이 실패의 책임을 진다.

▦정 사무총장=경영진의 인식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관용을 베푸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더 나아가 나름의 시스템을 축적해야 한다. 대기업이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력 풀을 만든다든지, 국가적으로 실패사례를 모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기술개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앞서 5,000개 중국 진출기업 중 500개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라질 위기에 처한 4,500개도 봐야 하고 살아남는 500개도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이냐의 문제로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새로운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