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열린사회'를 만들자] <1> 실패도 자산이다

美 '타코마교의 교훈' 을 아십니까
다리붕괴 사고서 진동메커니즘 규명 '실패학 대명사'
결과 집착 사회적 조급증이 '실패 자산화' 가로막아
원인·궤적 철저히 분석, 재발 막고 성공 방안 찾아야


황우석 교수 파문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실패증후군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후손에 물려줄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패를 성공의 자산으로 삼는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 해맑은 웃음을 띠며 달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우리 사회의 희망이 담겨있다.

[신년기획 '열린사회'를 만들자] 실패도 자산이다 美 '타코마교의 교훈' 을 아십니까다리붕괴 사고서 진동메커니즘 규명 '실패학 대명사' 결과 집착 사회적 조급증이 '실패 자산화' 가로막아원인·궤적 철저히 분석, 재발 막고 성공 방안 찾아야 문성진기자 hnsj@sed.co.kr 황우석 교수 파문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실패증후군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후손에 물려줄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패를 성공의 자산으로 삼는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 해맑은 웃음을 띠며 달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우리 사회의 희망이 담겨있다.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해협에는 ‘타코마교’라는 현수교가 창공을 가르며 시원하게 뻗어 있다. 이 다리는 교량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칭송받고 있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뼈 아픈 실패의 역사가 스며 있다. 지난 1940년에 세워진 타코마교는 당시 최첨단 공법인 현수교 방식을 채택, 미국 정부는 “어떤 태풍에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세계 2차대전이 진행 중이던 그때 타코마교는 ‘슈퍼파워’ 미국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다리는 하지만 준공된 지 불과 4개월 뒤인 그 해 11월 시속 70㎞의 ‘산들바람’에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인들은 경악했고 공사 책임자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처절한 실패가 화려한 성공으로 반전한 것은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다리 붕괴장면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 첨단공법의 다리가 산들바람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진동 메커니즘’을 기어코 규명해냈다. 미국이 현수교 건설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것은 당연한 열매였다. 미국 정부는 이후 바다 속에 가라앉은 다리의 잔해를 사적으로 지정했다. ‘타코마교의 교훈’은 지금도 처절한 실패에서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이끌어낸 ‘실패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환호’와 ‘비난’의 양면=‘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이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가 보였던 반응은 어찌 보면 병리적이다. 황 교수의 연구에 의문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MBC는 네티즌과 국민들에 의해 ‘매국노’로 매도됐었으나 이 같은 비난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황 교수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의 연구성과에 맹목적인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은 의혹을 제기한 매체를 집단 매도했으며 곧 이어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똑같은 강도로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이와 관련, “황우석 신드롬으로 한껏 부풀었던 희망과 자부심이 갑자기 허탈과 분노로 바뀌는 바람에 국민들에게는 정신적 공황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적인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책임자를 찾고 그를 엄중 문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좌절하기까지의 궤적을 자산화하는 작업이 보다 중요하다.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대부분의 성공은 수천, 수만번의 크고 작은 실패와 실수ㆍ좌절 속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국성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우리 사회는 실패의 주범을 단죄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실패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황 교수의 부분적인 실패에서 성공의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조급증’을 치유하자=2000년 6월 일본 과학기술청은 ‘실패학을 구축하자’는 독특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회 전체가 실패를 자산으로 활용해 재발을 막고 성공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실패학을 구축하자는 과학기술청의 요구는 10년이 넘는 초장기 불황 속에서 일본이 다시 일어서려면 사장되는 국가 자산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존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GE. 이 회사 역시 80년대 중반 제조경쟁력 약화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었다. 새 CEO로 등장했던 잭 웰치는 당시 ‘신규 영역 진출, 기존 영역 축소 또는 포기’라는 혁신적인 기치 아래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던 상당수의 제조 부문을 매각하거나 해외로 내보냈지만 냉장고만큼은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고수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생산라인에 포진해 있던 현장 근로자들의 ‘실패나 단점을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시키려는 열정’ 때문이었다. 결국 GE는 소음을 최소화한 냉장고 공조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 이 분야에서 여전히 강력한 시장지배자로 남을 수 있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실패학’이 엄연히 존재했었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1542∼1607년)의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중의 전황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이 땅에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참화가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참회와 염원을 담아놓았다. 우리 사회는 최근 성공욕구만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이 때문에 실패에 대한 검증이 사라지고 실패를 발판으로 성공의 팁을 얻으려는 진지한 노력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성공과 결과만을 바라볼수록 우리 사회의 집단 조급증은 그만큼 병적으로 심화된다. 소설가 김홍신씨는 “실패는 성공에 대한 예방주사이자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교과서”라며 “미래의 우리 모습을 걱정한다면 지금 바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실패보고서를 작성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입력시간 : 2005/12/30 17:22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