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닻을 올릴 때만 해도 오늘의 성공을 예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년이 지난 2005년, 이제 부산영화제의 위상에 토를 다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그 중심엔 김동호(68ㆍ사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있다. 30여년의 문공부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88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으로 올 때만 해도 ‘낙하산 인사’라고 비난받던 그가 팩스 한 장으로 칸, 베니스 등 세계 주요 영화제 인사들을 부산에 불러 모으는 국제 영화계의 마당발이 됐다. ‘남포동 로비스트’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파티에선 폭탄주 10잔은 거뜬히 해치우는 ‘분위기 메이커’다. 영화제(10월 6일 개막)를 보름 앞둔 김 위원장을 20일 만났다. 지난달 23일 대만으로 떠났던 출장길은 베니스, 토론토, 후쿠오카를 거쳐 추석 전날에야 끝냈다. 인터뷰를 마치는 대로 부산에 가 파라다이스 호텔 사장을 만나 “방 50개만 더 달라”고 읍소해야 한단다. 영화제 개막 전까진 매일 서울-부산을 오가야 한다. 하루 건너 하루씩은 각종 조찬회와 대학 강연이 잡혀 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1시간 동안, 정확히 13통의 전화를 받았다. -벌써 10년이다. 감회가 남다를텐데. ▦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영화제가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 첫 회 18만명을 동원하면서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열기를 몸으로 느꼈다. 부산영화제를 이만큼 만들었다는 자긍심과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 지에 대한 부담감이 교차한다. -명색이 10주년인데 눈에 띄는 이벤트가 없다. ▦ 칸, 산세바스찬 영화제 50주년을 직접 지켜봤다. 올해로 30년된 토론토영화제도 갔다. 그들도 별달리 특별한 행사를 안 하더라.(웃음) 아직 10주년은 걸음마에 불과하다. 굳이 한다면, 그간 성원을 보내준 아시아 영화인들을 위한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A)와 국내 관객들을 위한 PIFF 아시아 걸작 30선 정도가 있다. -세계적 영화제로 자리 잡았는데 아직도 규모를 내세우는 것 같다. ▦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사이즈(63개국 264편)가 우리에겐 적당하다. 지난해보다 10개국, 43편이 늘었지만 10주년 기념 아시아 걸작선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몇 개국 몇 편이라는 규모보다는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상영)를 얼마나 더 많이 유치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해나 올해나 개막작은 이미 칸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 매년 고충이 있다. 부산에 월드 프리미어로 많은 작품이 오지만 아직 개막작으로 걸기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올해 개막작인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는 2002년 부산프로모션플랜(PPPㆍ프리마켓)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칸에서도 경쟁에 오른 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월드 프리미어가 41편이다. 영화제에 더 관록이 붙는다면 최고의 아시아 작품으로 월드 프리미어 개막작을 선정할 날도 멀지 않았다. -10년간 ‘아시아 영화창구’를 내세웠는데 이제 전세계 영화계를 상대해도 되지 않았나? ▦ 영화제는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가야 한다. 부산이 아시아를 버리고 어설프게 세계로 나가면 무슨 차별화가 되겠는가. 시상식을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도쿄 영화제가 어설픈 세계화와 경쟁력 없는 시상식으로 실패하지 않았나. ‘부산에 오면 새로운 아시아 영화의 흐름을 볼 수 있다’라는 색깔은 계속 유지할 것이다. -올해 부산영상센터가 건립되면 영화제가 더욱 힘을 받겠다. ▦ 영화제 전용상영관이 들어가는 영상센터가 올해 해운대에서 착공한다. 현재 정부와 부산시 예산으로 460억원이 책정됐다. 여기에 시에서 140억원을 더 유치해 총 600억 규모로 짓는다. 2009년 완공되면 극장가 추석 대목을 피하는 ‘음력 영화제’ 꼬리표를 뗄 수 있다. 센터 옆엔 신세계백화점과 CGV가 세워지고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가 이전한다. 명실상부한 한국 영화의 메카로 거듭난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지 10년이다. ‘포스트 김동호’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 처음 자리를 맡을 때 10년 하면 물러나겠다고 다짐했다. 영상센터 건립은 보고 물러나야 겠다. 칸, 베를린 집행위원장들은 20년을 채웠지만 나야 더 하면 과욕이지.(웃음) 그 전에 영화제를 업그레이드시킬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내 임무다. -영진공 사장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지도 20년이 다 되간다. ▦ 공직생활 30년도 의미있게 최선을 다 했지만, 영화계 20년이 내겐 더 즐거웠고 보람찼다.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면 호주 영화학교에 유학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영화도 1편 만들 욕심이 있다. 10년 뒤엔 ‘김동호 감독’ 타이틀로 부산영화제가 날 초청해 줘야 할텐데…(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