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기관이 국내 증시에서 매도 규모를 키우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은 통 큰 순매수에 나서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인의 순매수 상위 종목 대부분이 최근 주가가 크게 빠진데다 당분간 상승 모멘텀도 부족해 개미들이 자칫 떨어지는 칼날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4,98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올해 들어 개인 순매수 금액 중 가장 큰 규모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833억원, 2,059억원을 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개인은 이달 들어 총 8거래일 중 소폭 순매도한 이틀을 제외하고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기간 외국인이 사들인 주식만 1조1,5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개미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인 주요 종목이 최근 주가가 급락한데다 단기간 상승 반전할 가능성도 낮다는 데 있다. 터질 게 다 터졌다는 판단에 저가매수에 나섰지만 아직 터질 게 남아 있는 '불발탄'이 될 수 있다.
개인이 최근 8거래일간 사들인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최근 주가가 크게 빠진 종목이 주를 이룬다. 상승장에 베팅하는 KODEX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가장 많은 돈(2,810억원)이 몰린 가운데 개미군단은 삼성중공업(1,445억원), LG화학(849억원), KT(722억원), 포스코(587억원), 제일모직(581억원), 롯데케미칼(530억원), 대우조선해양(493억원), LG전자(342억원) 등에도 러브콜을 보냈다. 특정 모멘텀이나 업종이 아닌 여러 개별 종목에 돈이 분산됐다. 눈에 띄는 점은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최근 주가가 암울했고 주가 전망도 불투명한 종목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제일모직과 LG전자는 최근 연일 신저가를 기록하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 후 각각 28.93%, 12.48% 하락한 이들 종목은 이달 들어서만 주가가 8.71%, 2.13% 빠졌다.
'충분히 싸진 종목을 담아 주가 상승에 대비한다'는 스마트 투자로 보기에는 이들 종목이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게 걸린다. 두 종목 모두 당분간 뚜렷한 상승 모멘텀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이 부품을 대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4와 갤럭시노트3의 출하가 둔화되고 있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의 신규 매출도 지연되고 있다"며 "계절적 비수기, 스마트폰과 TV세트 산업 둔화에 따른 화학 소재의 낮은 수익성이 이어지면서 제일모직의 단기 이익 모멘텀은 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가가 6만원 밑으로 이탈한 LG전자는 경쟁력 하락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HMC투자증권은 최근 LG전자 등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업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내렸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엔드 스마트폰 수요 위축으로 LG전자·삼성전자 등 한국 IT 업체의 실적모멘텀이 제한된 상황에서 4.7인치 아이폰 등장, 모바일 D램 수요 모멘텀 둔화, 소니 TV의 다양한 제휴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이들 업종의 주가 재평가 가능성은 미미하다"며 "하반기부터 위험요인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화학주도 중국의 경기회복이 지연되는데다 올 1·4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 당분간 주가가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조선주가 증권사의 업황 회복 전망에 기대고 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2·4분기부터 대형 조선사의 수주잔량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며 "해양공사와 액화천연가스(LNG)선 발주가 임박한 상황에서 올 1·4분기가 가장 적절한 매수 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원 동양증권 연구원도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갈등에 러시아 해양프로젝트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조선주의 주가를 끌어내렸다"며 "그러나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러시아 프로젝트 영향이 미미해 2·4분기에는 주가가 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도 조선주에 대한 매매 타이밍을 3~4월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