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주 중국 방문을 계기로 외교의 무게중심을 유럽에서 중국 쪽으로 이동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푸틴의 방중기간에 중국과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 협상을 최종 타결하고 동중국해에서 양국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밀월관계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20일 중국을 방문해 이틀 동안 상하이에서 열리는 '아시아 신뢰구축조치 회의(CICA)'에 참석한다고 중국 외교부가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도 발표할 예정이다. 청궈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굳건한 상호지지 입장과 국제 문제에 대한 전략적 협력 강화 등을 공동성명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2004년 이후 10년여간 끌어온 양국 천연가스 공급 협상이 이번 방중기간에 최종 타결될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업체 가스프롬이 앞으로 30년간 총 380억㎥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것이 골자로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대사는 중국 인민망에 "협상이 98% 진척됐다"고 밝혔다.
푸틴은 방중기간에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데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국가들과 관계가 불편해진 상태에서 중국과의 관계 강화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방중이 중요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도 푸틴이 시진핑에게 지지를 요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은 이미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방중기간인 20일부터 일주일 동안 중일 간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센카쿠열도 인근 동중국해에서 진행되는 합동 군사훈련에 해군함대 수십척을 파견하기로 한 점을 예로 들었다. 미국과 일본 정상이 센카쿠열도는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고 밝힌 지 한달 만이다. 이는 러시아가 중일 간 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도 러시아가 힘을 실어주기를 내심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러시아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천연가스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당장 가스프롬은 매출의 80%를 유럽 시장에서 올리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제재 여파로 수요가 줄어 곤란을 겪는 상황이다.
한편 푸틴은 다시 한번 천연가스 공급가 문제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며 우회적으로 서방을 압박했다. 그는 이날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우크라이나가 35억달러(약 3조6,000억원)의 가스대금 체납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다음달 1일부터 선불제로 가스를 공급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선불제를 거부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상 가스 공급 중단을 뜻한다. 푸틴은 다만 "현상황의 정상화를 위해 EU 국가들과 계속 협력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하며 위협 수위를 다소 낮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이 EU의 에너지 의존 독립을 부채질해 러시아의 입지를 줄일 수 있다는 고민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의 압박에 이고르 디덴코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스 체납액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