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 동력 급속 약화… 당 존립 흔들

구당권파 "정치살인" 공세에 혁신파 "무조건 처리"… 결론 못내

심상정(오른쪽) 통합진보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해 이석기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용석기자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26일 통합진보당 제명(출당)안 처리 여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기갑 당 대표, 심상정 원내대표 체제 출범 이후 쇄신 행보의 첫 과제였던 제명안 처리가 구당권파 측의 지연 작전에 계속 미뤄지면서 쇄신 동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구당권파가 '이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며 결사항전의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 체제로의 구축은 물론 야권연대 복원 등 당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진보당은 이날 국회 의원단 대표실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이ㆍ김 의원에 대한 제명안 처리에 나섰다. 지난 23일 의총에서 '모든 의원이 참석한 상태에서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구당권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논의를 뒤로 미뤘던 만큼 이날 의총에는 두 의원을 포함해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13명이 모두 참석했다.

회의 시작 전부터 의총 분위기는 무거웠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박원석ㆍ강동원ㆍ심상정ㆍ노회찬ㆍ서기호ㆍ정진후 의원과 김미희ㆍ김재연ㆍ오병온ㆍ이석기ㆍ이상규ㆍ김선동 의원이 마주 앉았다. 혁신파와 구당권파의 대치 상황이 테이블 의석 배치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캐스팅보트의 칼자루를 쥔 김제남 의원은 혁신파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의총 전 구당권파 측의 한 관계자는 "진보 정당에서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을 정치살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했고 혁신파 측은 "오늘(26일)은 무조건 처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양측의 대치 국면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회의 시작 전 악수를 청한 심 원내대표의 손을 이 의원이 끝내 외면하는 모습은 둘의 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는 구당권파의 반발이 지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약 3시간에 걸친 오전 의총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고 표결 처리를 위한 의총이 오후3시 재개됐다.

이날 제명 안건 처리에 따른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당권파 측은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곧바로 복당 추진을 시도하겠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행 당헌ㆍ당규는 제명 조치될 경우 3년간 복당을 금지하고 있지만 중앙위원회를 통해 복당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이를 활용해 제명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 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통합진보당은 당직자 인준안 처리를 위한 중앙위를 개최했으나 이 자리에서 구당권파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통해 회의를 무력화시켰다. 앞으로의 당 쇄신 길목마다 이 같은 발목잡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두 의원의 처분 문제뿐 아니라 북한 문제에 대한 노선 재검토 작업 등 당내 쇄신,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 복원, 나아가 대선 후보 선출 등을 위한 체제정비 등에서 번번이 구당권파의 저항을 이겨내야 하는 숙제가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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