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경제다/양평·편집위원(데스크 칼럼)

그래도 투표하자.그래서 꼭 투표하자. 입에서는 『먹잘 것도 없는 집에 제삿날만 자주 온다더니』하는 소리가 튀어 나와도 발길은 투표소로 옮기자.대선은 경제다. 경제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미래의 경제만도 아니다.누가 뽑히는가도 경제고 어떤 마음으로 투표하느냐도 경제다.그래서 투표율은 하나의 경제지표다.물론 대선에서 쏟아지는 돈도 경제다. 그래서 새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미리 짐작할 수 있다.지금까지 몇차례의 선거는 혼탁선거라는 딱지가 붙었고 거기서 태어난 대통령들은 혼탁병을 앓았다.경제도 혼탁해져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경제가 불투명하다고 지천한다. 지난 대선에서 얼마나 돈이 쏟아졌는지는 모른다.여당의 경우 5천억원이니 1조원이니 하는 소문만 나돈다. 그처럼 많은 돈이 경제계에서 빠져나간 것도 문제지만 아직 빠져나간 흔적도 못찾는 것이 더 문제다. 대통령은 그처럼 태아가 어머니의 칼슘을 빼앗듯 경제를 축내고 영양체계를 교란시키며 태어났다.취임한 뒤에는 고마운 기업에 특혜로 보답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경제 전반의 영양불균형은 심해졌다.한보사태가 좋은 예다. 그래서 TV선거라는 이번 선거에서 혼탁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은 것은 반갑다. 새삼 대선과 경제의 함수관계가 실감나고 그럴수록 혼탁했던 92년 대선이 아프다.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TV토론을 기피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은 웬만큼 알려져 있다. 그는 머리를 빌릴 수 없는 TV토론을 피하기위해 방송의 자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것은 늑대가 새끼양을 잡아먹으려 내세운 구실보다도 속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묵인한 셈이 됐다. 이제 물러갈 날만 세고 있는 대통령의 당선을 시비하고 싶지는 않다. TV토론이 이루어졌다 해서 당락이 바뀌었으리라는 근거도 없다. 그러나 그의 자질을 너무 늦기전에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를 「문민황제」로 떠받드는 대신 그가 제대로 머리를 빌리고 있는지 걱정스레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보다 「경제」로 바빴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에게 TV토론시비는 증권시장의 루머보다도 하잘것 없었다.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오늘의 종합주가지수는 그대로일까 다를까.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런 가상을 않는다면 더 어리석다.과거를 잊으려 한 것이고 미래를 포기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1류 경제에 3류 정치」라는 3류의 국민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경제가 4류가 돼서 그런 소리도 들어갔지만 원래 정치와 경제수준은 정치학과와 경제학과의 커트라인처럼 다를 수 없다. 왼팔과 오른팔처럼 구실이 다르지도 않다.그것은 살과 피처럼 하나의 유기체를 이룬다.물론 정경유착과는 다른 말이다. 정치와 경제만도 아니다.법조계도 법과대학의 커트라인과 다르다. 머리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재들을 싹쓸이해도 그 점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다.마피아들에게 걸맞다는 말도 있다.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건설회사도 국내에서는 기술수준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부근에 맞춰야 한다. 이 유기체의 수준은 우리 사회의 정의수준 그대로다.그러나 이처럼 싱거운 소리도 없다.우리 사회의 정의수준은 국민들의 손보다 까마득히 높은데 떠 있다.사법의 정의가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막상 나서기는 「마피아」와의 몸싸움같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대선은 이처럼 높이 떠 있는 정의가 우리들 손에 집히는 기회다. 누가 뽑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투표하느냐로 그 정의는 오르내린다. 그러기에 이번에도 마음은 무겁다. TV토론으로 혼탁이 가시었다고는 하나 우리의 눈은 아직 지역감정으로 혼탁해 있다.예각적인 지역대결은 피했다고 하나 「영남후보 불가론」으로 시작된 이번 선거는 대리전으로 치닫아 왔다. 지역감정은 이제 이 동네 사람을 뽑자는 향토애에서 저동네 사람은 안된다는 배타심으로 굳어가고 있다. IMF한파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퍼렇게 살아 있는 미움이 새삼 미련스럽다. 그래서 무섭다.침몰하는 한국호에서 1등실 2등실을 따지는것도 같고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차속에서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 액션영화도 떠오른다. 이제 신앙처럼 굳어진 이 응어리는 우리의 원죄같이 됐다.누구탓인가를 따져도 소용없고 응어리만 굳어진다.그러나 그것은 대선에서 비롯됐기에 그것을 풀 수 있는 기회도 대선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소를 찾아야 한다.기독교도나 불교도만이 아니다. 이승의 우리나라가 더이상 지옥으로 빠지지 않도록 다들 기도해야 한다. 특히 독실한 종교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은 기도에 앞서 스스로 한가지 의문을 떠올려야 한다. 종교천국으로 통하는 우리 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재앙은 「종교1류 경제3류」식으로 무관한 것인가.아니면 우리 사회가 종교천국이 아닌 소돔성이었는가.아직 소돔성은 아니기에 우리는 서두르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