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환급 문제만을 남겨놓고 있는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유럽계인 르노삼성자동차가 아이러니하게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진통을 겪던 양측 간 협상이 EU가 우리 측 관세환급제도를 인정하고 우리 측은 EU가 요구하는 원산지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타결의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국내 완성차 업계 중 외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르노삼성이 관세철폐의 혜택을 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19일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타결을 눈앞에 둔 한ㆍEU FTA 협상이 우리 측 관세환급 유지와 EU 측 요구사항인 원산지 강화를 바터(주고받기)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외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EU와 협상단 차원의 논의는 사실상 끝났다"면서 "EU 대표단이 관세환급을 인정하고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는 타협안을 회원국에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원부자재를 수입해 이를 가공 수출할 경우 원부자재에 부과한 세금을 돌려주는 관세환급을 용인하는 대신 원산지 기준을 강화해 FTA에서 관세인하 혹은 무관세 혜택을 받는 한국산의 인정 수위를 제한하기로 양측 간 접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한국과 EU 간 최대 교역품인 자동차의 관세특혜를 받게 되는 역외 부가가치비율(가격기준)을 종전 50~55%에서 45%로 강화하기로 해 프랑스 르노 측이 최대주주인 르노삼성차는 현 상태에서는 유럽에 수출할 때 한ㆍEU FTA의 혜택을 볼 수 없게 됐다. 한국산 인정 여부를 좌우하는 역외 부가가치비율이 낮아지면 해외에서 부품조달이 많은 국내 기업은 FTA를 체결해도 상대국 수출시 실익을 얻을 수 없다. 르노삼성은 외국산 부품이 약 50%를 차지해 막판 줄다리기 끝에 강화된 원산지 규정이 적용되면 유럽 수출시 관세인하 효과를 누릴 수 없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자동차산업팀장은 "현대ㆍ기아차는 국산화율이 높지만 엔진 등 핵심부품을 일본에서 들여오는 르노삼성은 원산지 규정이 강화되면 FTA 수혜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ㆍEU FTA가 체결되면 EU의 자동차 관세 10%는 1,500㏄ 이상 중대형은 3년, 1,500㏄ 미만 소형은 5년 내에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르노삼성은 연간 10만대가량의 수출 물량 가운데 EU에 4만~4만5,000대를 내보내고 있다. 정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27개 회원국으로 영토가 넓은 EU는 역내 부가가치비율을 높여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득이 크다"면서 "특히 자동차 등 제조업이 성장하고 있는 동구권 국가의 이익을 고려해 원산지 비율을 강화한 것인데 이 바람에 국내 대표적 유럽계 기업인 르노삼성이 피해를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