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회장은 일제 때 자동차정비공장을 세웠다. 돈이 모자라 거금의 사채를 빌려 썼다. 담보는 없었다. 물론 정회장은 원금과 이자를 다 갚았다. 나중에 담보도 없이 거금을 빌려준데 대해 그 사채업자는 '사람을 보고 빌려주었다'고 말했다. '사람 보는 눈'이 그에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이 모든 금융업자에게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빌려 쓴 사람이 다 정회장과 같지도 않다. 신용카드 발급수가 1억장에 육박하고 있다 한다. 1분기 중 신용카드의 현금대출이 100조원을 돌파했다고도 한다. 그 많은 사람이 그 많은 돈을 제때에 갚을 수 있을지 남의 일이지만 걱정된다. 또 사람을 제대로 본 다음의 신용공여인지, 빌려준 쪽의 사정도 걱정된다. 금융의 역사는 빌려준 돈을 제대로 회수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너그럽게 빌려주기도 하지만 빚독촉만은 지나치리만큼 가혹하다. 가혹하게 빚독촉을 하고 그래도 못갚거나 안갚는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 파멸시키고야 마는 금융 쪽의 집요한 추적은 시샛 말로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된다. 빚 못갚는 한 사람을 너그럽게 봐준다면 빚 진 모든 사람이 빚을 갚지 않으려는 모럴헤저드를 일으킬 것임으로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또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취할 수 있는 법적 제재는 빠짐 없이 취하고 사채업자의 경우엔 폭력배까지도 동원한다. 빚지고 안갚는다면 사회의 기본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그러나 빚과 관련된 모럴헤저드는 빌려주는 쪽에서도 발생한다. 못받을 위험엔 눈을 감고 마구 빌려준 다음 그 책임을 사회에 돌려 구제받는 것이 빌려주는 쪽의 모럴헤저드가 된다. 이런 시비는 최근 국제금융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IMF등을 통한 구제금융에 제동을 걸어 빌려준 쪽에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일고 있다. 신용카드사태를 화산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터진다면 그 책임은 카드사에게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정태성(언론인)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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