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업의 생존조건

이런 재벌기업들의 자의반 타의반식 변화를 지켜보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나 거래관습 등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 대비한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즉 사업구조나 조직의 체질을 미래형으로 조속히 바꾸어야 한다는 얘기다.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미래환경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 예측이다. 정보가 시공의 한계를 넘어 빠르게 퍼져나가는 광속(光速)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정보기술의 변화가 제조업의 변화속도에 비해 얼마나 빨리 진전되는가는 다음의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최근 30년 동안 컴퓨터 산업이 성취한 것을 자동차 산업도 함께 발맞추어 이루었더라면 현재 롤스로이스 승용차 한 대의 생산원가는 2.5달러 수준이고 휘발유 1ℓ당 주행거리는 80만㎞를 넘어섰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정보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말로서 이에 비해 제조업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내포돼 있다. 이렇게 세상은 정보화 사회로 내닫고 있고 엄청난 규모의 부가가치가 정보산업에서 창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국내산업은 아직도 제조업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이제는 자동차·철강·조선·반도체·석유화학 등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라고 뿌듯해하는 제조업 중심사고에서 깨어나 기술·지식·정보를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대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또하나 특징은 승자 하나가 시장을 독식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이 지금은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이고 이 속에서 누가 주어진 시장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리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승자도 과거와 같이 여럿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둘의 승자만 있을 뿐 나머지는 승자에게 먹히는 양상이 더욱 뚜렷해져가고 있다. 각 산업마다 1등과 2등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따라서 1등이 되기 위한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 대기업들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업종다각화라는 구태를 벗어던지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에 전력을 투구해야 한다. 「비아그라」로 잘 알려진 제약회사 파이저는 150년간 제약업에만 진력해온 회사이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규모도 대단하다. 지난해에 투입한 연구개발비만도 23억달러로 매출액의 17%에 달하며 이는 우리 국내 제약업계 총 연구개발비 2억달러의 무려 1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래사회의 또다른 특징은 한 사람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살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빌 게이츠나 야후의 제리 양, 손정의(孫正義) 같은 사례가 속속 나타나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런 창의적인 인재발굴에 우리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정·재계간담회를 통해 우리 재벌기업들의 개혁과 체질개선이 논의돼 합의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차제에 미래형 사업구조로의 변혁도 동시에 추구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점도 기업에는 무시할 수 없는 21세기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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