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초 내리막후 후반상승 많아
>>관련기사
대선이 막을 내렸다. 승패자가 누구인가에 관계없이 대선 폐막은 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정치주기와 경기순환의 관계를 규정하는 이른바 '정치적 경기순환론'에 따르면 선거직전 지지율을 높이려는 정부는 통상 확장적 정책을 선호하고 이에 따른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선거직후 새 정부는 긴축정책을 펴게 된다.
이 이론이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선거직전의 경제상황이 투표행태에 미치는 영향이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정부의 경기 조절 능력도 국가마다 다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고,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낮은 국가에서는 이 이론이 적잖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 임기말 부양책 경기순환 초래
민주적 선거제도를 갓 도입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행정부는 90년대 각종 선거에서 통화량과 재정지출을 늘이고 최저임금을 상향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 했다.
그 결과 인플레율은 상승했고 경기는 팽창했다. 그러나 선거 후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긴축 정책을 실시해야 했고 경기는 다시 하강했다.
이 같은 양상이 러시아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난 수 십년 간 정정불안에 시달려 온 남미의 각 국가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정부의 통화팽창으로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고, 이는 경제위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도 대선 때만 되면 수 천억의 돈이 시중에 쏟아지며 경제가 팽창하고, 대선이 끝나면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긴축정책이 필요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처럼 정권초기의 긴축정책과 정권후반의 부양정책으로 나타나는 경기순환은 '정치적 경기순환'이라 불린다.
'정권 초반 경기 하강, 정권 후반 경기 상승' 형태를 띠는 정치적 경기순환은 경제규모가 작아 정부의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크고 선거가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발생가능성이 높다.
▶ 선거의 정치경제학
냉전 종식 후 경제가 각종 선거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면서 '경제가 나쁘면 선거에서 패배한다'등식이 입증되고 있다.
걸프전 후 경제가 침체에 빠졌던 지난 92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한 것이나, 경제가 호황기에 있었던 84년과 9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이 같은 주장의 사례들이다.
지난 96년 한국 대선에서 야당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외환위기에 빠진 경제 상황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선거에서 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은 통상 통화량 증가,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지지율 상승을 꾀한다.
재정지출 중에서도 연금, 의료비, 교육비 등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재정지출의 확대가 단골 메뉴가 된다. 세금 유예, 최저임금 상향, 가계대출 장려, 고용창출 및 증시부양을 정책도 지지율 상승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선거 직전의 경기부양책은 그러나 새 정부를 일종의 딜레마에 빠뜨린다. 임기 후반의 확장정책을 위해서는 임기 초 긴축정책이 필요하지만, 선거 기간 중 제시한 각종 선심성 공약을 추구하려면 경기팽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시켜 주는 것은 유권자의 시간에 따른 망각 성향. 정권 초 공약이 지켜지지 않음에 따른 실망보다는 정권 후반 경기팽창에 따른 만족이 실제 투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정권 초 경기안정을 우선 추진하게 된다.
▶ 임기초 지나친 긴축 경계해야
정치적 경기순환 이론은 70년대 중반 미국 예일 대학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에 의해 정형화된 이후 학계 및 정계로부터 지속적인 도전을 받아 왔다.
이론이 상정한 기회주의적 정치인, 무지한 유권자, 정부의 경기 조작 능력 등이 비판의 주요한 대상이 돼온 것. 실제 미국에서는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퇴임 이후 정치적 경기순환 양상은 사라졌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이와 관련 네덜란드의 유력 싱크탱크인 틴버겐 연구소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및 동유럽 각국의 정치적 경기순환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다수의 국가에서 여전히 정치적 경기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그러나 정치적 경기순환이 정부 구조에 의해 영향 받을 수 있음도 함께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이면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중앙은행이 오히려 선거직전 긴축정책을 펴는 경향이 있다는 것.
한국의 올 대선에서 주요 정당이 공식적으로 지출한 비용은 500억원을 약간 웃돌지만, 비공식 지출을 합치면 대선기간 중 경제에 풀린 돈은 최소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이 재정적자를 기록한 지난 97년~99년 사이 연간 재정적자의 1%를 웃도는 수준으로, 한국 역시 정치적 경기순환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새로 들어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정치적 경기순환에 따른 지나친 경기위축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대환 기자<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