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근씨 무혐의 처리 「재기발판」 제공/은닉재산 규모도 미궁에「납득이 안 간다.」
19일 검찰의 한보철강부도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일반인들은 물론 금융전문가들도 일제히 고개를 내젓고 있다. 도무지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수서사건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돼 업계에서마저 기피했던 기업인에게 대출됐는데도 그 배후가 스스로 「깃털」에 비유한 일개 청와대수석비서관 출신의 국회의원이었고 은행장들이 뇌물을 먹고 수천억원씩 대출을 계속 했다는 설명에 어이없어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수사결과는 무엇보다 정태수씨 일가의 재산살려주기를 위한 면죄부가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우선 검찰은 최소한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자금유용부문에 대해 정태수씨의 일방적 진술만 설명했을 뿐 유용자금의 용처나 정씨일가의 숨겨진 재산에 대한 검찰이나 세무당국, 금융감독기관의 추적없이 덮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과거 부도기업처리나 산업합리화과정에서는 일단 기업주의 숨은 재산을 모두 찾아내는데 당국이 최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데 비해 이번에는 손을 놔두고 수사가 종결됐다.
더구나 정태수씨만 구속되고 아들 정보근회장이 풀려난데 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정보근씨에 대한 무혐의 처리는 부도 처리된 한보철강 등 4개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한보건설 등에 대한 재산권보전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한보철강의 유용자금으로 인수한 한보건설, 대성목재 등 알짜 계열사들은 정씨 재산으로 고스란히 남고 그 재기의 발판은 정보근씨의 무혐의 처리로 더욱 분명해졌다는 이야기다.
정태수씨가 『경영권은 포기해도 재산은 포기할 수 없다』는 강변을 증명하듯 거액의 대출금을 모두 떼일 위기에 놓인 은행에는 한보철강에 대한 추가지원을 강요하면서 정작 빚을 얻어 쓴 기업주에는 재산몰수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이미 92년 대선에서 거액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태수씨와 관계당국간에 모종의 묵계가 있거나 사건수사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특히 검찰은 실질적으로 정태수씨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정씨의 친인척인 정분순, 선희자매를 조사하지 않았다. 과거 수서사건 때도 비자금관리의 핵심인물은 친척인 천모양이었으나 수사가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역시 정모양이 관리해온 비자금장부가 드러나지 않는 한 비자금규모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정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