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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흉기 피습을 막지 못한 데는 미국대사관이 대사의 일정 보안을 위해 한국 경찰에 특별히 경호요청을 하지 않아 경호 공백이 생겼던 것이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행사 주최 측도 초청 대상자가 아닌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25㎝의 과도를 지니고 행사장에 입장하도록 현장보안을 허술하게 했던 점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경찰당국이 최근 확산되는 반미 분위기를 감안해 미국대사관의 요청이 없었더라도 리퍼트 대사가 참석하는 행사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대비를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리퍼트 대사는 외국 요인이지만 경찰의 경호 대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테러나 납치 등으로 국가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국내 주요 인사를 경호 대상으로 선정해 밀착경호를 하게 되지만 외국인이 경찰의 경호나 요인 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사례는 아직 없다. 이 때문에 리퍼트 대사 경호는 미국대사관의 자체 경호인력이 주로 담당해왔다.
이날 행사 전 미국대사관 측의 경호요청도 따로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흉기 피습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호장치마저 없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에서는 미국대사관에 대사의 일정 공유를 부탁하는데 대사관 측에서 대사의 동선이 밝혀질 수 있다며 잘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날 자체적으로 리퍼트 대사의 참석 사실을 파악하고 행사장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주변에 기동대원 25명과 정보과 형사 2명, 외사과 형사 1명 등 경찰 28명을 배치했지만 적극적인 경호업무가 아니다 보니 피습사건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리퍼트 대사가) 경호 대상자가 아니어서 행사 참석자의 흉기 소지 여부 확인 등 특별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과거사 발언' 등으로 주한 미국대사관 근처에서 집회가 잇따르는 등 미국대사관 인사들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에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범행을 저지른 김 대표는 과거 일본 대사 피습 전력이 있는 '테러 요주의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관리감독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행사 주최 측의 안일한 인식도 리퍼트 대사가 무방비로 위협에 노출되는 후진국형 사고를 낳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이번 행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소속 단체회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로 진행한 행사지만 현장보안을 허술하게 하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테러가 가능한 환경이었다. 실제 초청 대상자도 아닌 김 대표가 25㎝의 과도를 몸에 지닌 채 버젓이 행사장에 입장해 흉기를 마구 휘두른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민화협은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김 대표는 민화협 회원이나 행사 초청 대상자는 아니었다"며 "행사장에서 돌발사태에 대한 경호대책 등이 미흡했던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