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2중 기준

골프 경기를 할 때 곧잘 시비가 벌어지는 일이 있다. 룰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OB라인을 놓고 판정시비를 벌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야 명문화된 규칙이지만 그린에서의 공의 위치라는 증거는 라운딩을 하던 사람들이 배심원격이 돼 판결이 난다.그런데 아주 찜찜한 시비가 있다. 바로「노 터치 플레이」규칙이다. 그거야 당연한 기본 룰이지만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일수다. 그래서 경기하기 전에 원칙 선언을 하고 게임을 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다 그렇지는 않지만) 2중 기준의 유혹에 빠진다. 남을 감시할 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해진다. 진짜 살벌하게 감시를 하지 않는 이상 공을 건드렸는지 확실하게 확인할 길은 없다. 단지 심증만으로 혐의를 두게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경기를 진행하다 보면 작은 갈등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 공정한 룰은 간데없고 이기기에만 골몰해 장갑을 벗을 때는 승자도 패자도 그리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피차간에 이 룰을 어긴 것이 들통나면 서로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 2중 기준이 불공정을 낳게되고 게임의 룰은 간 곳 없어진다. 권력남용 시비를 벌일 경우 불법은 확실한 증거에 의존해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지극히 애매한 경우들이 등장한다. 치죄를 하는 쪽이 룰을 어긴 자를 징벌대에 올려놓는 것은 그 행위가 공정치 못할 때로 인정할 만하다. 즉 불법자를 골라서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지 않고 불공정이 있으면 불법의 문제는 희석되고 치죄를 하는 쪽은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된다. 법정의 피의자들이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것 가운데 「왜 나만 재판정에 끌어내느냐」는 말은 무죄 변론의 호소력은 갖지 못하지만 법 집행자에게는 메시지를 남긴다. 정치적 색채가 미묘하게 풍기는 사건에서 2중 기준이 작용되는 것은 군부시대로 마감된 것 같지는 않다. 권력문화에서 법이 권력의 하부구조인 것처럼 보이는 징후는 아직도 많다. 골프 경기에서야 기분만 찜찜하고 말일이지만 이런 불공정 경기가 묵인되는 건 사회체제 자체가 왜곡되는 심각한 문제다. 법치시대는 불법자를 징벌하는 데 엄격해야 하지만 그 집행과정이 공정해야 뿌리를 내린다. 이건 누가 죄 짓고 안 짓고를 넘어 법의 본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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