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과 1951년 영국 총선. 당시 다트포드 지역구 후보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식료품 집 둘째 딸이라는 조소 속에 남성 후보 노먼 도드에게 연거푸 패했다. 그러나 그는 유권자들의 냉대에 굴하지 않고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 1959년 하원의원, 1975년 보수당 당수를 거쳐 1979년 첫 여성 영국 총리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영국 총리였으며 영국병에 맞서 경제 부흥을 이끈 강인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 같은 대처의 성품은 영국 중부의 작은 마을 그랜섬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한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식료품점 점원에서 점장으로, 다시 정치에 입문해 그랜섬 시장을 지낸 로버츠는 자수성가형 인물로 딸 대처의 큰 존경을 받았다. 대처는 부친을 통해 '개인의 운명은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을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또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엄격한 자립을 강조한 감리교 전통 역시 대처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부친이 대처가 열 살 남짓한 때부터 자신의 운동원으로 선거에 참여시킨 것도 훗날 정치가로서 자질을 가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처는 이후 대학 재학 중에도, 두 자녀의 어머니가 돼서도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총리 사임 후에도 대처는 열성적으로 공직 활동에 참여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자신의 첫 지역구였던 핀칠리에서 다시 하원의원을 지냈고 이후에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였다.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의 고문을 맡기도 하고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윌리엄앤메리대학의 명예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1년 영국 총선 때는 보수당 선거운동 지원에도 나섰다. 2002년 이후 치매 증세와 잦은 심장발작이 찾아왔으나 여전히 열성적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