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경기가 67개월 연속 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실업률이 3%대의 완전고용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비정규직 확산, 고령화 가속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선뜻 소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도쿄 오모테산도(表參道)에 갈 곳 없이 모여든 젊은이들이 30도의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
[日 호황의 그늘] "백화점 간지도 오래됐다" 지표만 호조
■ [르포] 日 사상 최장 호황의 그늘양극화 심화로 지방·서민경기 여전히 싸늘젊은 세대 불안도 소비시장 회복에 먹구름
도쿄=신경립 기자 klsin@sed.co.kr
일본 경기가 67개월 연속 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실업률이 3%대의 완전고용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비정규직 확산, 고령화 가속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선뜻 소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도쿄 오모테산도(表參道)에 갈 곳 없이 모여든 젊은이들이 30도의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관련기사
실질소득 제자리 "경기회복 체감못해"
일본 중장년층이 소비 '버팀목'
일본 최대 백화점 브랜드인 다카시마야 신주쿠점. 가을 신상품이 걸리기 시작한 여성복 코너를 둘러보는 20~30대의 젊은 여성 고객들이 제법 많지만 구입한 물건을 담은 쇼핑백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여성의류 브랜드 판매직원인 시마다(23)씨는 “한국ㆍ중국인 고객이 좀 많아진 것 같다”면서 “그밖에는 특별히 경기가 나아진 것을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경기지표가 아무리 ‘호황’을 외쳐도 일본인들의 씀씀이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반면 엔화 가치가 떨어진 틈을 타 구름처럼 몰려오는 한국ㆍ중국인 쇼핑객들의 활짝 열린 지갑이 일본의 내수경기를 지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직 여성인 치과의사 기무라(35)씨의 경우도 씀씀이가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독신여성인 그녀의 경우 “백화점은 안 간 지 오래됐다”며 “월급이 모이면 해외로 나가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때 자가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이젠 굳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방ㆍ서민 경기는 불황 그늘 짙어=지난해 일본 사회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가 ‘격차사회(隔差社會)’다. 자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부유층과 빈곤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도시와 소도시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시부야 세이부백화점 식품매장에 근무하는 오쿠라씨는 ‘경기가 좋다’는 말에 선뜻 공감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3월 지하 식품매장 리뉴얼을 마친 후 고객층은 다양해졌지만 고객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며 “200엔짜리를 먹던 사람들도 지금은 150엔짜리를 찾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도쿄 신주쿠와 같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백화점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지난 4월 현재 백화점 매출 감소폭은 도쿄ㆍ요코하마ㆍ나고야ㆍ교토ㆍ오사카ㆍ고베 등 6대 도시에서 0.05%에 그쳤다. 반면 10대 도시는 1%, 10대 도시를 제외한 전국 매출은 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지방 소도시의 소비 경기는 여전히 싸늘했다.
영세 점포들로 구성된 각 지역 ‘상점가’의 경우 사실상 ‘불황 한가운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상점가에서 실시한 한 조사 결과 업황이 이전보다 ‘후퇴’ 또는 ‘정체’됐다는 의견이 전체의 98%에 달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다 보니 상점가마다 10개 점포 가운데 하나는 비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 영세 상가의 빈 점포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어선다.
일본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요 몇 개 도시를 제외한 베드타운이나 지방 소도시의 경우 땅값 하락과 소비 위축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지방, 중소기업 등의 경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치상으로는 경기호조가 이어지더라도 전국적으로 체감경기가 살아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가 불안하다=두꺼운 인구층과 든든한 통장을 갖춘 고령층과 달리 젊은 세대는 인구층이 얇고 지갑 사정이 불안하다는 점도 소비의 발목을 잡는 주요인이다.
오랜 동안 채용의 문을 닫았던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면서 20대의 취업 문은 활짝 열린 상태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의 기간에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생활을 꾸리거나 아예 구직 의욕을 잃어버린 30대들에게는 취업 문이 여전히 닫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후생노동성의 노동경제백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가운데 15~24세 젊은 층의 비중은 2002년 56.2%에서 2005년 51.6%로 줄었다. 반면 25~34세의 비중은 43%대에서 48%대로 늘어났다. 취학도 취직도 안 하고 ‘놀고 먹는’ 니트족은 2000년 들어 25~34세 인구가 15~24세를 앞지른 이래 꾸준히 차이를 벌리고 있다. 기모토 야스유키 JRI 사장은 “사실상 취업이 어려워진 30대 프리터나 니트족은 일본 경제의 앞날 뿐 아니라 훗날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에서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5,000만명에 달하는 연금 기록이 분실되고 연금운용 부실이 부각됨에 따라 젊은 세대의 연금에 대한 불신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절대적인 인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단카이 세대의 자녀, 이른바 ‘단카이 주니어’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일본 인구는 이미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다. 빠르게 진전되는 고령화의 그늘은 일본 소비시장의 앞날에 가장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임에 틀림없다.
입력시간 : 2007/08/14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