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퇴직금부문 부담덜어” 내심 환영/노동계 “근로자 생존권과 직결” 강력반발기업파산시 근로자 퇴직금을 우선 변제토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37조 2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앞으로 금융기관의 담보관행과 퇴직금제도, 경매절차 등은 물론 노사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가 법조항을 개정할 때까지 이 조항은 적용이 중지돼 현재 기업파산 등과 관련해 법원에서 진행중인 부동산 등 담보물권에 대한 경매절차는 중지될 수 밖에 없으며 관련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업이 파산했을 경우 가장 많은 채권중 하나인 퇴직금 변제분을 산정할 근거조항의 적용이 중지됐기 때문에 채권자들끼리 변제 우선순위를 다툴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은행권 등 금융기관에 담보를 잡히고 자금을 대출받을때 미래 발생할 비용인 퇴직금 부분을 미리 산정해둘 필요가 없어져 담보능력이 그만큼 확대되게 됐다. 이에따라 금융기관도 기업측에 적용하는 담보관행에 보다 많은 융통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기업과 금융기관 모두 파산 등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무조건 우선 변제해야 하는 퇴직금만큼의 부담을 덜게 된 셈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와관련, 『퇴직금 우선변제 조항때문에 은행 등 금융기관은 채권확보 수단의 안정성을 갖지 못해 담보물권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등 기업금융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금융계와 재계로서는 상당히 부담을 덜게돼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재계는 이번 결정이 노사화합무드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회사가 파산했을 경우 퇴직금은 받지못하고 최종 3개월분의 임금밖에 변제받을 수 없게 돼 당장 생계수단에 위협 받는 등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헌재는 『사용자와 근로자는 기업의 일체적인 운영주체』라며 『기업이 퇴직금 우선변제권 때문에 담보가 있어도 자금을 조달받지 못해 도산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이번 결정은 궁극적으로 근로자 복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로총 등 노동계는 임금채권 우선변제 관행이 지난 74년부터 대통령 긴급조치에 의해 현재까지 시행돼 온 점을 감안, 갑작스런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상당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근로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즉각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임금채권 우선변제의 보장은 근로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데다 퇴직금의 법적 성질이 임금후불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장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퇴직금체불액은 현재 총 8백57억3천1백만원이며 이중 청산이 가능한 것은 4백52개 사업체의 6만5천78명분 6백85억5천8백만원이다.
한편 근로자들은 앞으로 기업파산시 퇴직금지급 보장을 위해 퇴직금 중간정산과 퇴직금연금보험 등 리스크 헤징에 적극 나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또한 선진국처럼 기업연금 보험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 회사가 긴급한 경영위기에 몰렸을때 근로자들의 피해를 줄여줄 수 있는 보호장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최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