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시론/8월 12일] 현정은 회장도 클린턴처럼

유영옥(경기대 국제대학장·민주평통 안보국제위원장)

지난 3월17일 두만강 인근에서 불법월경 혐의로 북한군에 체포된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 문제는 미국 당국의 끈질긴 석방요구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아까운 시간만 흘려 보내 이를 지켜보는 가족은 물론 미국 국민들 모두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이들 여기자가 억류 140여일 만에 전격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으니 정말 축하해야 할 일이다. 北 '통미봉남 정책' 중단해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집권 이후 줄곧 북한당국은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적대적인 정책기조를 표명해왔기 때문에 전세계의 이목은 두 여기자의 석방 여부에 쏠려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해 “강제수용소로 가는 줄 알았는데…지난 140일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와 핵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제1차 핵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해 북미대화의 돌파구를 열었으며 2000년 10월 미사일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에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초청해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관계를 반전시켰다. 이런 사례는 김정일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갖고 적어도 ‘북한’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여실히 입증해 우리가 그토록 중시하는 ‘인권’이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보편적 민주주의 원칙이나 ‘법치주의’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 하는 점을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특히 김정일의 말 한마디나 지시가 ‘통 큰 용단’으로 과대포장돼 헌법에 규정된 각종 법령이나 준칙ㆍ기준 등을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는 점은 북한이 신분제적 질서를 유지해오던 과거 봉건왕조나 조선조와 다를 바 없는 전근대적 사회임을 방증하기도 한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절차ㆍ방법을 통해 ‘통일’을 이끌어내야 하는 우리 정부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들 여기자 석방이 앞으로 미북관계 및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정(路程)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둘러싸고 내외에 흘러나오는 소식에서는 미북 양국의 시각이나 관점이 너무나 상반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북한의 각급 관영매체들은 이번 방북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두 나라의 관계개선 방도와 관련한”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클린턴과 김정일 간 면담과 만찬 등 두 차례의 회동에서 “조ㆍ미 사이의 현안이 진지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게 논의됐으며 대화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대한 견해일치가 이룩됐다”고 밝혔으나 정작 상대방인 미국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클린턴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환한 웃음’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표현해왔으나 이번 방북에서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대신한 데 비해 김정일은 줄곧 미소를 띄우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계기로 원용함으로써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양국 간의 상반된 행태는 앞으로의 미북 양국 간 관계개선 문제, 그리고 북한 핵개발 문제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 움직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이런 성과가 보다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인 북한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벌써 1년 이상 표류해온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하며 비핵화를 위한 근본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진정으로 ‘민족공조’를 원한다면 더 이상 온갖 구실과 변명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통미봉남 정책’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억류 130여일째를 맞은 개성공단 근로자 유씨 및 10여일째 조사하고 있는 ‘800연안호’ 선원을 석방해야 한다. 북한 당국의 현명한 현실인식과 판단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억류 민간인 동반 귀환 기대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차일피일 시간이나 끌면서 계속 억류 민간인들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남북관계 경색국면은 활로를 찾기 어려울 것이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외면을 자초해 정권 자체의 붕괴까지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10일 2박3일의 일정으로 북한을 전격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면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과 면담을 거쳐 현 회장이 유씨와 선원들과 함께 동반 귀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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