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누가 이길 것인가" 촉각

反부시 정서 확산 케리 승리에 은근히 기대

그동안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케리 지지도는 압도적이었다. 또 대부분 국가의 정부도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해도 알게 모르게 케리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 대선 전야 유럽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이길 것이며, 유럽엔 어떤 영향을 줄 것인 가였다. 선거 결과 케리가 당선되면 유럽에 환호의 물결이 일 기세다. 그러나 환호가 오래가지 못하고 실망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나 새로운 짐도 지게 된다는 것이다. 미 워싱턴의 현대독일연구소 잭슨 제인스 소장은 독일 공영 ARD방송 인터뷰에서케리가 당선되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현재 부시가 유럽과 마찰하는 사안은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도 남아있으며, 누가 당선되든 미국으로서 취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도 비슷한다"고 밝혔다. 유럽에 반(反)부시 정서가 확산된 것은 일방주의적 외교정책 때문이다. 냉전 종식 시점 부터 미국 그늘에서 벗어나려던 유럽과 미국 간 갈등은 시작됐다. 부시 행정부 이후 교토 기후협약, 국제형사재판소, 중동 및 이스라엘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찰이 커졌다. 무엇 보다 이라크 침략을 계기로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일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묘수는 많지 않으며, 두 후보 모두 실질적으로 유사한 전후 처리 계획을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보안군 훈련강화, 총선 조기실시, 새 이라크정부를 출범, 보안군 출범, 국제적 군사지원 확대, 미군 감축이라는 수순을 밟아 발을 뺀다는 것이다. 대니얼 코우츠 주독일 미국 대사는 1일 "케리 후보는 당선되면 독일군 파병을강력히 요청할 것이며, 이는 양국 간 심각한 쟁점이 될 것"이라면서 부시 보다는 오히려 케리의 당선이 독일 정부에 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버트 전 주독 미국 대사와 루돌프 샤르핑 전 독일 국방장관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독일과 프랑스로선 새로운 정당성을 갖고 등장한 미국 대통령의 이러한 요청을거절하긴 쉽지 않다. 이라크 침략 반대로 손쉽게 국제적 이미지를 높이고, 자국내지지도를 끌어올린 독.불 정상이 미묘한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역설적으로 부시에 적극 동조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경우 부시 승리가 악재일 수 있다. 케리가 승리하면 1년 여 남은 총선에서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거리를 둘 여지가 생기고 강경 이미지의 부시와 협력한다는 인상 때문에 자국 내에서 낮아진 지지도 만회를 시도할 수 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게될 공산이 크다. 물론 케리가 당선되면 적어도 미-유럽 간 분위기는 나아질 수 있다. 케리 후보가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유럽 등 우방과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익을 미국식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근본적 입장에서는 두 후보가 마찬가지다. 특히 케리가 기후협약이나 국제형사재판소 등의 사안에대해 입장을 바꾸려 해도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어 바꾸기가 어렵다. 외교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민의 생각과 미국의 정책 기조가 바뀌고 세계가 변했음을 지적한다. 미국민의 관심에서 유럽의 비중이 작아진 상황에서 초강대국 미국과 유럽의 협력관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 패튼 유럽연합(EU)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앞으로 미국이 유럽을 진지하게 대할 경우 우리가 받게 될 가장 큰 질문은 `우리가 말하는 곳에 행동과 돈을투입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1일자 유럽 신문들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면서 미 대선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린 것은 그만큼 어느 대보다도 약한 유럽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인과 크고 작은 난쟁이들 간'의 대결과 합종연횡이 미 대선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 지 주목된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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