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공기업이 구조상 안고 있는 문제점은 수없이 쏟아져나왔지만 공기업 이 자체 비판을 가한 것은 한전이 처음이다.한전은 자기비판을 통해 경영의 비효율성과 이에따른 기형적인 재무구조에서부터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구조, 소비자들의 불만에 이르기까지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취약점을 완전하게 드러내고 현상태로는 기업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산업자원부및 한전에 따르면 한전은 「전력산업구조개편 100문100답」보고서를 통해 독점공기업 체제에 내재한 문제점을 국회에 제출했다.
◇방만한 경영과 투자 = 한전이 스스로 제일 첫번째로 꼽은 문제점은 독점공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이었다. 자기책임 아래 적정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비효율이 발생했고 이에따른 부담은 소비자로 전가됐다는 분석이다.
기복이 심한 전력공급예비율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지난66년 약 1%였던 공급예비율은 주기적으로 과잉과 과소를 반복했다. 80년대 중반에는 공급능력을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의도에서 지나친 설비투자가 이뤄져 61.2%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적정 예비율을 초과하는 과잉설비 400만㎾를 보유할 경우 투자비 약 2조3,000억원과 자본비용 약 1,955억원이 낭비된다. 과잉투자에 따른 책임은 절대 가벼운 게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책임문제가 단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지난해 154㎸급 송전선철탑 건설공사에 31억원이 과다지출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음에도 과다지급액이 전혀 환수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전은 미국의 통신회사인 넥스트웨이브사에 약 2,00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율 경영의 족쇄 공익부담 = 현행 전기요금에는 전기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외에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부담하는 공익적 부담금이 포함되어 있다. 연간 규모로만 약 1조원이다. 국내석탄산업지원, 발전소주변지역지원, 기술연구개발및 중소기업 지원등 한전이 부담하는 공익자금명목은 수도 없이 많다. 지난 98년 한전의 순(純)공적부담금은 영업비용의 3%, 당기순이익의 30%에 달했을 정도였다.
◇요술방망이 연료구입비 = 한전은 연간 약2,500만톤의 유연탄을 발전자제로 해외에서 들여온다. 이가운데 80%는 가격이 훨씬 비싼 장기공급계약에 의해 톤당 약38달러씩을 들여 수입한다. 톤당 9달러정도가 싼 현물시장에서 사오는 유연탄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만약 10%만 현물시장에서 더 사오더라도 2,25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수익은 뒷전으로 미룬 채 안정성만 따진 부담은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국정감사감으로 충분하다.
한전은 경제성이 낮은 무연탄을 정부 정책에 따라 의무적으로 구입하고 있으며 액화천연가스(LNG)도 의무적으로 고가에 사들여 발전연료로 쓰고 있다.
◇기형적 재무구조 = 한전은 매년 증가하는 전력수요때문에 신규발전소건설을 확대해 왔다. 덩달아 외부차입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난95년 8조8,000억원이었던 부채는 지난해 23조원을 넘어 올해 6월 현재 24조5,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외화차입규모는 92억1,000만달러로 환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부채비율은 지난해 115%에서 175%로 크게 높아졌다.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장사였다. 한전의 시가총액은 최근 주가(4만원선)로 따져볼때 자산규모(62조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조수준이다.
한전은 현재대로라면 오는 2003년 부채는 40조원에 이를 것이며 운영자금도 자체조달할 수 없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 규제 = 환경영향평가등 민간기업에 적용되는 일반적 정부규제, 인허가, 감독사항을 제외하고도 한전의 정부승인·보고·협의사항은 수십건에 달한다. 한전은 지난해 국회보고, 국정감사 준비를 위해 인건비로반 연간 8억7,620만원을 지출했으며 보고서 인쇄비 소모품비용으로 지출된 자금도 약 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조직의 관료화 = 한전은 조직이 관료화되고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신속한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권한이 상위로 집중되어 사장이 결재실적이 해마다 1,000건이 넘고 있다. 한전은 또 연공서열 의식이 강하게 남아있고 가능한 한 인력을 많이 투입하고 동일한 인력 수준에서는 자본을 확대 투입하려는 이른바 A-J(AVERCH-JOHNSON)효과를 선호하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자체 비판했다.
박동석기자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