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원’ 다시 문열어

지난 1995년 타계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 발명가 고 공병우 박사의 제자들이 공 박사의 뜻을 이어가고자 문을 닫았던 `한글문화원`을 다시 열었다. 1988년 설립 이래 한글 글자꼴과 남북한 동일 자판 연구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가 공 박사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폐쇄된 지 8년 만이다. 한글 사랑에 대한 스승의 유지를 저버릴 수 없어 한글문화원을 다시 연 주인공들은 시인 송현씨와 `한글과 컴퓨터` 부사장 박흥호씨, 전 유니텔 동호회 연합회장 이성우씨 등 3인방. 이들은 지난 봄 공 박사의 기일(忌日)에 모여 한글문화원 재건을 결의했다. 이후 석달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동대문구 장안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그 동안 닫혔던 문을 다시 열었다. 이성우 사무국장은 “세벌식 지원이 안돼 실제 상황에 쓰이기 어려웠던 예전의 도스(DOS)체계 때보다 현행 컴퓨터 운영 체계상 세벌식 글자판 사용이 훨씬 손쉬워졌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조촐한 현판식을 가진 이들은 “`나라사랑의 근본은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세벌식 자판 표준화와 남북한 글자판 통일로 스승의 뜻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 공병우 박사는 독학과 강습소 교육만으로 1926년 조선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국내 최초의 안과 전문의로, 지금도 버스정류장 푯말로 사용되는 종로입구와 광화문사이 `공안과`는 바로 그가 의료 불모시대의 개척자로서 활동하던 곳이다. 공 박사는 1938년 눈병 치료를 받으러 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과 해후하면서 한글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깨닫게 됐다. 이후 일본어로 된 의학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던 중 한글타자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공 박사는 타자기를 사다가 내부구조를 스스로 배워가면서 시행착오 끝에 1949년 한글 기계화 역사에 획을 긋는 국내 최초의 고성능 한글 타자기 발명에 성공했다. <조충제기자 c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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