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국가지배구조

지난 2월 출범후 두산중공업과 화물연대 파업사태에서 분명한 친노(親勞) 성향을 보였던 참여정부는 조흥은행과 철도노조 파업에서는 공권력 투입과 대규모 징계 등 달라진 대응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현대자동차의 경영진이 노조의 경영 참여와 임금 조정없는 주5일제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한총련의 미군 훈련장 시위가 겹쳐 국정 표류를 절감하게 한다. 정부는 엄정대처를 언명하지만 그 본심은 알 수 없다. 정부정책 특히 경제정책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가변적이다. 그러나 현실상황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더라도 뚜렷한 정책의지와 지도이념으로 구성된 정책사고의 틀이 확고하다면 모든 정책 수단들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수행될 수 있으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정부정책의 전형적인 접근방법은 본질적인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체질강화방식` 보다는 현상의 문제점을 시정하는 처방전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증상치료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부정책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본질이나 원칙에 대한 심각한 고려없이 여론(필요하면 조작할 수도 있는)에 따라 정책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정이념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으니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한층 더 높아진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시장경제를 바로잡기 위한 최우선 정책과제로 재벌개혁과 분배의 정의를 택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재벌 오너와 전문 최고경영자의 경영권 독점을 막기 위한 각종 장치를 도입하면서도 자신들의 은밀한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를 썼던 것도 사실이다. 좋은 기업지배구조의 요체는 가장 능력있는 최고경영자를 선임하되 이들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여 경영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전문성있고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확보하는데 있다. 그동안 정부는 상장ㆍ등록법인에 대해 과반수 사외이사의 의무화, 경영진과 회계투명성 감시의 대표기구인 감사위원회 제도도입,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제정발표, 사외이사와 대표이사 선출과정의 객관성 및 투명성 강화 및 집단소송제도의 도입 등을 제도화ㆍ법제화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일부 상장 대기업은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될 정도로 기업지배구조와 관행을 훌륭하게 구축했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성적은 좋은 지배구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탁월한 경영성과는 역량있고 정직한 최고경영자의 최선의 노력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으며 기업지배구조의 역할은 이들이 극단화 경향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에 국한된다. 기업들의 변화에 비춰 본다면 막상 지배구조의 개혁을 주도하고 강요해 온 국가지배의 구조와 관행은 아직도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경영의 성공 역시 능력 있는 국정지도자를 선출하고 이를 감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 기업이나 국가나 성과란 본래 말 잘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경영속담에 `조직의 구성원은 리더의 입을 믿지 않는다. 발(행동)을 믿을 따름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도자에게 공통된 제일의 덕목은 정직성이지만 성과를 내는 데는 지도자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나 그 보다는 사람을 쓰는 능력 즉, 인재를 알아보고 이들을 적소에 쓸 수 있는 지도자의 안목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힘을 합하고 전심전력을 다해도 국민소득 2만달러 선진국가의 진입은 쉽지 않은 목표다. 21세기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시대다. 그래서 세계적인 일류기업들은 최고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승계`를 내세우고 있다.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은 `최고의 최고경영자`를 지속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원리는 국가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직의 성패는 지휘자가 결정한다`는 장교교육 첫날의 강의를 상기하자. 필리핀과 같이 일찍이 선진화되고 개인적인 역량을 잘 갖춘 국민들이 있는 나라도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극소수를 제외한 전국민이 고생을 하게 된다. 기업경영이나 국가경영을 막론하고 견제와 균형보다는 리더십의 발휘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한 시점이다. <김일섭 (이화여대 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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