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피해당사국 능가하는 발언ㆍ행동
영국과 일본이 미국 테러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피해당사국인 미국을 능가하는 과감한 발언과 행동을 아끼지 않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테러발생 이후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과감한 응징을 줄곧 주장해왔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달 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 의회연설에 직접 참석한데 이어 4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파키스탄 방문 등을 목적으로 출국하는 등 테러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군은 테러 이후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 군대와 교전을 벌였다.
또 지난달 말에는 지난 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아라비아해에서 실시했으며 아프간 공격에 미군과 함께 참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영국 및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 '블레어의 역할'이란 제목의 데스크 제언을 통해 영국의 외교 및 군사정책이 지나치게 앞서간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독일 등도 이슬람 국가들과의 외교문제 및 자국 내 이슬람인들에 대한 부담 등으로 신중한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적극적이기는 마찬가지. 미국이 요청하지도 않은 군사지원을 서두르다 지난달 인도양으로 파견했던 이지스함을 회항시키는 소동을 빚었다.
5일 각의에서는 자위대의 주일 미군기지 경비를 허용하는 자위대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위대 파병방침 발언 등을 통해 강경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 한국, 타이완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주변국가들의 입장을 고려, 일본에 전후 아프간 및 파키스탄 경제 재건에 재정적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자위대법 및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현실이다.
영국과 일본이 이처럼 국내외의 반발에도 불구, 군사ㆍ외교적으로 과감한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것은 국제외교무대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확대시키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전문가들은 영국이 미국 못지않은 역할을 수행, EU 내에서 프랑스, 독일 등을 제치고 외교 및 군사정책을 주도하겠다는 속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역시 고이즈미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군사, 외교적 입지강화 정책을 이번 기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펼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김호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