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때면 입꼬리가 코끝과 평행을 이루는 프랑스 남자 올리비에 로런스(48ㆍ사진)씨는 회사 내에서 '악수맨'으로 통한다. 오전9시쯤 출근하면 전 직원들과 꼭 악수를 하며 풍부한 미소를 선보인다. 아침에 마주치지 못한 직원이 있다면 퇴근 전까지는 꼭 얼굴을 보고 악수를 나눠야 마음 편히 퇴근한다.
악수맨 로런스씨는 스포츠 브랜드 푸마코리아의 사장이다. 아디다스 본사 세일즈팀장, 뉴발란스 유럽 영업본부장, 푸마 프랑스ㆍ포르투갈지사장을 지낸 로런스씨는 올해 초 푸마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했다. 최근 서울 신대방동 푸마코리아 본사에서 로런스 사장을 만났다. 그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기업가정신, 경영자 마인드 정도로 풀이되는 '앙트프러너십'. "푸마코리아 직원이라면 절대 현실에 만족해서는 안 돼요. 지금은 직원이지만 스스로가 사장이고 주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국 생활 10개월째인 로런스 사장은 한국의 소비자들을 접할 때마다 지금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아디다스 등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 회사들을 두루 거쳤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처럼 특별한 소비자들을 못 봤단다. "한국인들은 트렌드에 정말 민감해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에서는 하나가 주류로 떠오르면 그것을 따르지 않으려는 소비 패턴도 강하게 일어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마치 그룹처럼 움직이는 것 같아요." '우사인 볼트 운동화'로 통하는 푸마의 러닝화 'FAAS300'은 전세계를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운동화시장에 분 화려한 색상 바람 덕에 녹색과 노란색이 바탕인 FAAS300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한국 시장의 소비자들은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미세한 바늘땀의 차이도 금세 알아챌 정도로 민감해요." 로런스 사장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보다도 민감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시아권 나라들에서는 한국 시장의 동향을 파악해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로런스 사장은 무엇보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말단 직원의 한마디라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회의의 기본도 브레인스토밍. "어떤 의견이든 머릿속의 생각을 입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 다음에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은 브레인스토밍 없이 윗사람의 지시에만 따르는 조직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의사 결정에 있어서 문화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푸마코리아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로런스 사장은 "프랑스에 있을 때도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의사소통에 있어 유럽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직설적이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인들 사이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직원들의 의견과 신문의 경제면을 가장 신뢰한다고 한다. 아내, 자녀 셋과 함께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 살지만 프랑스인들보다는 의식적으로 한국인 이웃을 더 많이 사귀는 편이란다.
15년 동안 스포츠 브랜드에서만 직장생활을 해온 로런스 사장은 '운동광(狂)'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장 때문에 운동을 배운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운동에 심취했다고 한다.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찾기보다 안 좋아하는 운동을 꼽는 편이 더 쉽다"고 말할 정도다. 스키ㆍ스노보드ㆍ사이클ㆍ모터사이클ㆍ축구ㆍ배구ㆍ테니스ㆍ배드민턴 등이 다 로런스 사장의 '주종목'이다. 매일 오전7시부터 40분간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러닝 시간이고 매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고궁을 방문하는 등 한국의 역사ㆍ문화 체험에 시간을 할애한다. 로런스 사장은 뉴발란스에서 일하던 시절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를 직접 기획해 업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주일간 진행된 대회에 1,000명이 넘는 참가자가 지원했다. 운동이라는 말에 눈빛부터 반짝거리는 로런스 사장이지만 골프는 문외한이었다. 푸마코리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코브라-푸마골프 홍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코브라-푸마골프는 지난 2008년 국내에 소개된 후 30% 이상씩 연간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운동과 모험을 좋아하는 로런스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푸마는 또 한번의 도전을 했다. 국내 패션디자이너인 박승건씨가 만든 패션 브랜드 푸시버튼과 협업해 의류 라인을 내놓는 것. 15일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연예인 마케팅'에 의존하기보다 기존 브랜드와의 협업 등 이슈로 승부하는 전략도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다. 연예인을 싫어해서는 아니다. "싸이와 슈퍼주니어를 좋아합니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구 신 나잖아요. 푸마와 잘 어울리죠. 개인적으로는 광고 모델 제의도 하고 싶어요." 원래 독일계 브랜드였지만 2007년 프랑스 PPR그룹에 인수된 푸마는 구찌ㆍ이브생로랑ㆍ보테가베네타 등 명품 브랜드들과 한 가족이 됐다. 로런스 사장은 "푸마코리아도 한국의 구찌ㆍ발렌시아가 등과의 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푸마는 고유의 DNA를 가지고 있어요. 협업을 할 때도 원칙이 있죠. 다른 브랜드들이 기술과 기능에 집중할 때 우리는 생동감 넘치고 신나는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패션 브랜드·자동차 메이커와 협업으로 이미지 변신 ■ 푸마 영역확장 원동력은 축구화 전문 기업으로 시작 패션·골프용품시장 등 진출 양준호기자 1924년 운동화회사로 시작한 푸마는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축구화로 유명했다. 펠레, 에우제비우, 요한 크루이프, 로타 마테우스, 마라도나 등 전설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푸마 축구화를 신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푸마가 떠받드는 브랜드의 최고 가치는 실용성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푸마 하면 축구화부터 떠올릴 사람은 거의 없다. 1993년 요헨 자이츠가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면서 주입된 디자인 제일주의는 실용성에 갇혀 있던 푸마의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줬다. 스포츠 종목별 제품에 고유의 기능성은 유지하되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구실에 초점을 맞췄다. 축구화 브랜드에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스포츠 브랜드 중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자체적으로 제한하는 '탄소 중립 기업'을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마는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일환으로 오는 201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5% 수준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3월부터 모든 신발제품의 포장 박스를 가방으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똑똑한 작은 가방(Clever Little Bag)'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친환경 소재로 만든 이 신발 포장 박스이자 훌륭한 가방은 스위스 출신의 유명 산업 디자이너 이브 베하르와의 콜래보레이션(협업)으로 탄생했다. 이 같은 협업은 푸마의 이미지 변신을 이끈 일등 공신이다. 푸마는 브랜드의 정통성에 안주하는 대신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분야로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패션계의 거물들인 독일의 질 샌더, 영국의 알렉산더 매퀸, 일본의 미하라 야스히로, 터키의 후세인 살라얀까지 푸마와 공동작업을 했다. 이들의 이름을 붙인 제품들은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매출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의 수직상승이다. 푸마는 샌더와 매퀸 등이 패션계에서 구축해온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푸마코리아도 별도로 국내 디자이너 최범석과 손잡고 독특한 제품군을 선보이기도 했다. 푸마의 협업은 패션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 페라리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굳이 자동차 마니아가 아닐지라도 페라리의 상징인 야생마 로고는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기 마련. 페라리의 야생마 로고와 푸마 로고의 결합은 브랜드 간 협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드라이버ㆍ골프화ㆍ골프의류 등으로도 범위를 넓혀 젊은 골퍼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페라리와의 협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푸마는 이번 가을ㆍ겨울 시즌에는 BMW 미니(MINI) 자동차 브랜드와 손잡고 '미니 바이 푸마(MINI by PUMA)' 컬렉션을 선보인다. 포뮬러원(F1)의 메르세데스팀을 후원하기도 하는 푸마는 자동차 분야와의 꾸준한 협업으로 푸마가 지닌 역동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