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식 업무” 흑자창조 해결사/「영업 베테랑」답게 판매망관리 빈틈없이/신규사업·적자계열사 정상화신화 이룩/“중국에 제2금호그룹 건설”… 타이어공장 진출 박차도지난 94·95년 2년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던 금호타이어가 지난해 81억원의 흑자를 내며 그룹 주력회사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세계적인 고무가격 인상으로 원재료 단가가 급상승했고, 사회적으로 노동법 파문이 거센 가운데 그동안의 어려움을 불식시킬 값진 열매로 평가되고 있다.
이 회사 경영정상화의 일등공신인 남일 사장(62).
남사장은 그룹내에서 「독한 사람」으로 통한다. 극심한 노사분규로 엉망이 된 회사를 정상화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그가 주력사인 금호타이어 사장으로 발탁된 것은 지난 94년 8월. 한달간의 분규로 당시 회사는 파산직전에 몰려 있었고 노사불신은 심각했다. 그는 발령받자 마자 분규의 앙금이 채 가시지 않은 광주공장으로 달려갔다. 서울 본사에 있던 사장실은 아예 폐쇄하고 기획조정실도 모두 짐을 꾸려 동행, 현지에 비상캠프를 설치했다.
서울 본사에는 웬만한 급한 일이 없으면 아예 올라오지 않고 현장챙기기에 열중했다. 3층건물인 광주공장 사무동 2층 임원층에 설치돼 있던 사장실도 1층 직원 사무실으로 옮겼다. 누구든 볼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들어오라는 의도였다. 집무실에 깔아놓은 카펫도 없애 버렸다.
『공장에 왜 카펫이 필요하냐』는게 그의 말이었다. 아직도 광주공장 사장 집무실 바닥은 맨바닥이다. 남사장은 지금도 일주일에 1차례 업무협의차 상경할 뿐 광주에 상주하며 현장을 챙기고 있다. 이같은 현장경영이 현장근로자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면서 금호타이어는 그가 부임후 무분규기업으로 탈바꿈했으며 지난해 흑자기업에 올라 비상의 기틀을 다졌다. 남사장의 사내별명은 「알파치노」. 말 수가 적은데다 작달막한 키에 유도로 다져진 단단한 체구, 여기다 깔끔한 외모와 매너가 돋보여 임직원들이 대부의 주인공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의 별명에는 남다른 그의 의리경영도 녹아있다.
남사장은 금호그룹의 최고경영자 가운데 흔치않은 정통 금호인의 한사람이다. 광주고조선대를 거쳐 57년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여객에 입사한 이래 금호를 떠나본 적이 없다.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의 장·차남인 박성용 명예회장, 박정구 회장보다 먼저 금호맨이 됐다. 박회장과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인연을 맺은 죽마고우로 아직도 중요현안은 박회장과 긴밀히 협의해가며 일을 처리하고 있다.
한번 밀어붙이면 끝장을 보고 마는 추진력은 그의 오늘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그는 그룹의 신규사업에는 해결사처럼 발탁됐다. 지난 91년 적자기업인 금호이피고무를 맡은 지 1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금호타이어 재직중 판매담당 이사판매담당 상무서울사무소 영업총괄 전무 등을 거칠 정도로 영업분야의 베테랑이기도 하다.
60년대 금호타이어 중견간부로 일하던 당시, 교통과 통신사정이 열악한 강원도지역 판매망 구축의 특명을 받고 현지에 파견돼 억척스럽게 판매망을 구축하고 6개월 후 상경해 보니 가족들이 모두 이사가고 없더라는 뒷얘기 한토막은 아직도 임직원 사이에 회자된다.
『그룹의 모기업으로 각 계열사의 홀딩컴퍼니인 타이어사장에 재기용된 것도 이런 탁월한 경영능력이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대부분의 기업이 모기업 만큼은 오너가 직접 경영하거나 직계자손을 임명하는 것이 관례라는 점을 비춰볼때 그룹이 남사장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측근들은 『겉으로 풍기는 외모는 엄격하나 사석에서는 정담을 즐기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사장실을 개방해 월 1회 신혼부부를 초청, 티 타임을 갖는다. 주말에는 사원들과 함께 근처 야산을 찾는다. 때로는 야영도 즐긴다.
남사장은 올들어 지난해 11월 가동에 들어간 연산 3백만개 규모의 중국 남경공장과 천진(4월 준공) 등 현지타이어공장에 온통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남경공장은 2000년대 그룹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올리겠다는 그룹의 첫 해외공장인데다 금호는 중국에 제2의 금호그룹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마스터플랜을 추진중이다. 금호는 2005년까지 전세계 주요국가에 8∼10개의 현지공장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특히 중국은 급속도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아직도 회사가 적자가 나도 국가가 보조해주는 국영기업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현지인들이 「하면된다」식의 한국식 경영론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차 서로의 문화와 관습을 인정해주면서 남경공장도 안정을 찾고 있다』고 남사장은 전한다.
남사장은 『국내공장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서고 노사도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구축됐으니 올해에는 품질경영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정승량>
□약력
▲35년 전남 고흥생
▲광주고조선대 졸
▲57년 광주여객 입사
▲78년 금호실업 상무
▲82년 금호타이어 전무
▲91년 금호이피고무 사장
▲94년 금호타이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