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금융 출발부터 '엇박자'

금융권 "과감한 세제 완화등 정책지원 선행돼야"
재정부 "은행이 직간접투자 나서야 제도적 지원"


친환경산업의 자금줄인 녹색금융산업이 정부와 청와대ㆍ금융권의 동상이몽으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권은 은행들이 과감한 세제 및 재정지원, 재정건전성 규제완화 등의 정책지원이 선행돼야 녹색금융산업에 뛰어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은행 등이 먼저 구체적인 녹색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에 나서야 제도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녹색산업 및 녹색금융 거품 우려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초창기에 어느 정도의 거품형성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지만 재정부는 거품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녹색산업의 거품을 거둬내는 주체에 대해서는 정부와 청와대는 금융기관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금융권은 정부가 먼저 녹색산업의 기준을 마련해 거품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특히 정책지원이 먼저냐, 민간의 금융투자가 먼저냐를 놓고 금융권과 정부의 논쟁은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 재정부는 은행 등이 먼저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모델을 만들고 직접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사업에 뛰어들어야 이를 바탕으로 미비점을 찾아 구체적인 지원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가 녹색산업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나 재정지원을 선행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것은 정책 메커니즘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직간접적인 재정지원에 대해서도 "먼저 전체적으로 (여러 사업분야에) 어떻게 정부 예산을 배분할 것이냐 하는 재정계획이 세워져야 그 그림을 바탕으로 녹색금융에 대한 구체적인 재정지원을 논의할 수 있다"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민간 은행들은 정부의 세제 감면이나 재정적 지원 없이는 초창기 단계의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가 수익을 낼 수 없을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간부는 "친환경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해외 유수의 펀드들을 보면 연평균 5~9%의 수익성을 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친환경산업의 기술 수준과 시장규모가 미약해 이 정도의 수익성을 낼 만한 투자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임원은 "정부는 녹색산업 분야 기업에 은행이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지금 은행들은 금융위기에 따른 자산건전성 확보 문제와 지속적인 수익률 하락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줄 규제완화나 제도적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은행이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녹색투자 리스크 누가 총대 메나=이른바 녹색 거품론도 걸림돌이다. 은행들은 투자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금융투자 대상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예를 들어 녹색인증 기업을 지정하거나 녹색기술의 표준을 제시해 은행들이 거품 기업을 선별해 투자나 대출에 나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녹색 거품을 걷어 옥석구분을 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닌 은행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보기술(IT) 산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거품은 있었다"며 "녹색뉴딜 과정에서도 산업의 성장을 위해 거품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이것을 가려내는 것은 은행 스스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녹색기술에 대한 법적ㆍ제도적 정의를 내리는 것 정도는 정부가 할 수 있지만 녹색 기업을 정부가 직접 정의 내려달라는 것은 금융을 편하게 하겠다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다만 녹색 거품에 대해 청와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재정부는 "이미 녹색이라는 말이 산업분야에서 남용되고 있다"며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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