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 세계 통신시장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개발체계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지적은 특히 개발 주역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1일 ETRI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97년부터 한국통신 주관으로 개발해 온 IMT-2000은 3년차인 지금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정선종(鄭善鍾) ETRI원장은 『선진국에 비해 현재 약 2년정도 뒤진 상태』라며 연구진도가 지지부진함을 인정했다.
이같은 연구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연구개발 역량이 분산된 때문. 현재 ETRI에는 71개 기업(모토롤러·노키아·에릭슨 포함)이 컨소시엄을 구성, 공동개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만 공동개발이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발의 주축이 돼야 할 대기업들이 공동연구에는 발만 걸쳐 놓고 실제로는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ETRI의 올해 IMT-2000 개발 예산은 197억원. 정보통신부가 105억원, 71개 기업이 92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기업들 부담은 평균 1억3,000만원도 안된다.
반면 개발 주역이 돼야 할 삼성·현대·LG 등 대기업들은 3~4억원씩만 내고 있다. 연구인력도 LG 5명, 현대 2명만 파견하고, 삼성은 단 한명도 없다.
이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공동연구사업에 마지 못해 참여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삼성·LG·현대가 자체적으로 IMT-2000개발에 1,000여명의 인력과, 올해만 500여억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ETRI의 한 개발 담당자는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참여한 대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은 IMT-2000 개발보다는 곧 있을 정부의 사업자 선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개발계획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ETRI의 개발 과정은 어깨 너머로 구경만 하고 있다』며 『정부주도의 개발에서 빠지면 사업자 선정 때 불리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비효율적인 연구에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백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