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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강도 높은 수준의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고 정권의 도덕성마저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이는 또 방미 성과마저 물거품으로 만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갈수록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공직기강 확립 ▦관련자 책임추궁 ▦미국 측에 수사협조 등을 약속했고 청와대 참모들에 대해서는 위기관리능력 부재 등을 질타했다.
당초 박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건과 관련해 발언할 수준이 ‘유감’ 정도로 예상됐지만 발언의 수준은 “국민 여러분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로까지 높아졌다.
대통령의 사과는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 12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장ㆍ차관급 낙마 사태를 낳은 부실 인사 논란과 관련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재외동포 사회를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박 대통령이 사과 발언의 수위를 높인 것은 ‘윤창중 사태’로 야기된 국정운영 난맥상을 신속하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특히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고서는 사태를 매듭 짓기 어렵다고 판단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 출범 초 인사 난맥으로 지지율이 40%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북한 도발위협에 적극 대처하고 성공적인 한미 정상회담으로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윤창중 사태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예상치 않은 악재였다.
또 사안이 정책적 판단이나 단순한 실수로 보기 힘들고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만큼 전날 허태열 비서실장의 사과에 이어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까지 나서 사과함으로써 이번 사태에 정면 대응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폭발성과 휘발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은 이날 사과와 함께 공직기강 확립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서실 등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허 실장도 이날 ‘비서실 직원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통해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앞으로 청와대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무관용 원칙(no tolerance)’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허 실장은 또 “국민들이 공직자 자세를 보는 시각과 잣대가 점점 엄격해지고 있는 만큼 지금보다 훨씬 더 엄중한 도덕성과 윤리의식ㆍ근무기강을 확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 실장은 이와 함께 민정수석실에 이번 방미단의 모든 일정을 재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순방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잘못이 있는 직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고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위기관리능력 부재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은 귀국종용 여부를 놓고 서로 책임을 전가했고 박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지 26시간이 지나서야 늑장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방미팀은 귀국 후에도 이 홍보수석의 부적절한 사과 등으로 성난 민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조만간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강확립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홍보수석실을 비롯해 참모들에 대한 인적쇄신 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