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통화 협정국에 맡기고 달러貨 수혈"'아시아인의 힘을 모아 국제 금융위기에 공동 대처한다'.
지난 97년 타이, 인도네시아, 한국 등을 휩쓴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에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위주의 국제금융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당시 단기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고전하던 국가에 주변국들이 십시일반격으로 여유자금을 공동제공, 긴급자금을 수혈할 수 있었다면 심각한 위기는 비껴갈 수 있었다는 자성(自省)도 뒷따랐다.
그러나 아시아통화기금(AMF)이나, 동아시아경제회의(EAEC) 창설 등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혁신적인 제안들은 미국 등의 반발과 내부이견 조율 실패로 번번히 무산됐다.
뒤늦게나마 한국ㆍ중국ㆍ일본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통화스와프협정에 합의한 것은 동아시아 지역에 나름의 금융질서를 수립하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외환위기 공동대응
이번 협정으로 13개 국가 가운데 어느 한곳에 외환 움직임이 불안정해질 경우 해당국가 중앙은행의 요청으로 필요한 달러자금을 긴급 지원하게 된다.
단독으로 통화방어에 나서다 외환보유고를 소진, 위기를 부채질한 이전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우를 피하자는 것이다.
통화스와프협정은 산하 회원국이 자국통화를 타국에 맡기고 미 달러화를 융통하는 방식으로 달러화 부족으로 인한 환율불안 사태를 조기에 안정시킬 수 있게 된다.
특히 최근 일본 엔화가치 급락과 미국 경기둔화로 인한 수출감소 등으로 동아시아 경제에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번 협정이 체결돼 그 파급력과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내 경제협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번 조치가 걸음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말레이시아가 이번 통화스와프를 IMF와 완전히 별도로 운영하자는 의견을 막판까지 고집했던 것처럼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경우 이에 대한 중재역할을 수행할만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국가별로 결제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대출한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회원국간 개별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등 추가보완책도 절실한 상황이다.
일본과 중국의 협력제고를 경계하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블록 형성을 원치 않고 있다는 점도 경제협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대응과 파급영향
정부는 이번 논의가 우리나라 주도로 진행되는 만큼 적극적인 입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싱가폴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담에서 역내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통화스와프가 긴요함을 역설하고 상호논의를 강조했었다.
아시아 역내 통화스와프의 의의는 아시아 각국의 협력을 통해 아시아 각국 통화가치의 안정을 도모하며 역내의 경제적 번영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특히 지난 97년 동남아 통화위기와 같이 역내 경제적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아시아 역내의 협력을 통해 극복해 보자는 뜻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등 국제기구가 있지만 아시아의 번영은 아시아의 협력을 통해 이룩해 보자는 의미이다.
통화스와프가 진전될 경우 보다 구체적인 이익으로는 외환보유액을 과도하게 보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있다. 유사시 자국통화와 필요한 통화를 교환(swap)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이 지난 97년 IMF위기 이전부터 강조해온 AMF(아시아 통화기금)의 창설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국의 유보적인 입장과 함께 미국과 IMF의 강력한 반대등 아직은 환경조성이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통화스와프 확대는 아시아 역내의 통화협력을 확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AMF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98년 일본과 5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과는 현재 협상중이다. 정부는 한중간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아세안+3 스와프협상의 진전정도에 따라 아세안 개별국가들과 스와프협상 체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세부적인 진전내용은 오는 5월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 총회의 아세안+3 재무장관 회담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안의식기자
김호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