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아시아 주주들이 경영진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강화하며 성역(?)으로 여겨지던 최고경영자(CEO)에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그 동안 아시아 기업들은 특유의 문화 특성상 연공서열, 명예 퇴직 등의 관행에 젖어 예정된 시기에 CEO를 점잖게 교체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주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사회나 주총장에서 예고 없이 실적이 부진하거나 부정거래 의혹이 있는 CEO를 강제 해직 시키는 이례적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업체인 부즈앨런 해밀턴이 12일 전세계 2,500개 주요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시아(일본 제외)는 지난 2000년 강제로 CEO가 교체된 기업이 한 곳도 없었으나 지난해에는 무려 4.9%에 달했다. 또한 일본도 2001년 0.3%에서 지난해 3%로 높아져 아시아 주주의 적극적인 경영 감시 추세를 반영했다.
반면 이사회와 주주 기능이 가장 활성화한 미국에서 강제로 사직 당한 CEO의 비율은 4.2%로 전년의 2.7%보다 높았지만 2000년의 5.2%보다는 떨어졌다. 지난해 대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과 CEO들의 과다 특권 및 보수 문제, 그리고 거래 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진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강제 교체 비율이 적었다는 평가다. 유럽은 같은 기간 3.7%에서 3.6%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한편 지난해 전체적으로 CEO가 교체된 기업은 조사 대상의 10.1%였다. 이 가운데 실적 부진 등으로 강제 퇴직 당한 CEO는 39%에 달해 전년의 25%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이 같은 추세는 강제 퇴직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 주주이익률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CEO가 축출된 기업의 주주이익률은 CEO가 자발적으로 퇴진한 기업에 비해 6.2%포인트 낮았다. 이는 2001년의 11.9%, 2000년의 13.5%포인트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