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다. 저자처럼 '일하는 엄마'라면 더욱더 그렇다. 딸 아이가 먹을 컵케이크를 굽다 보니 새벽 2시가 됐다. 아들을 치과에 데려가느라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그 시간 컴퓨터를 켜 새벽 4시까지 일을 한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손에 든 채 아이들을 깨우러 방에 들어갔다가 아들의 태권도 발차기에 강타당해 커피를 온통 쏟았고, 젖은 책을 닦고 말리느라 출근이 늦어졌다. 그날 오전 예정됐던 일 모두가 미뤄져 추가 근무를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
하루 4~5시간 밖에 못 자 멍한 상태로, 그리고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을 받으며 저자는 생각한다. '시간 부족이 나만의 문제일까?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요령 있게 활용해서 일도 훌륭히 해내고, 부모 역할도 잘하고, 빨래도 말끔히 개고, 풍부한 여가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있나. 물론 미국 대형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보다 조금은 덜 바쁠지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일 또는 가정(혹은 둘 다)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고민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현대인 모두가 느끼고 있는 '시간 압박' 현상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취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나긴 탐구 과정을 엮어 이 책 '타임 푸어(원제 Time Poor)'를 펴냈다.
우선 그녀는 자신이 '쫓기는 삶'이라 이름 지은, 초긴장 상태로 언제나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삶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 많은 연구자들이 그들 사회의 '타임 푸어' 현상을 보고하며 '첨단 기술'과 '역할 과부하' 현상에서 이유를 찾았다. '역할 과부하'란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항상 곁에 두고 24시간 이메일을 확인하는 활동 같은 것들. 이는 특별히 긴 시간이 들진 않지만 대신 시간을 '수천 개의 작은 조각'으로 찢어놓는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다는 자체가 결국 일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바쁜' 이유로 사람들이 '바쁨'의 가치를 숭배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발견했다. '한가로움'이 패배자의 상징이 된 사회에서 '바쁨'은 기꺼이 따라야 할 사회적 규범이 됐다.
그렇다면 이 만성적인 '타임 푸어'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시간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여럿을 만나 해법을 듣고 독자를 위해 정리해준다. 먼저 직장에 완전히 헌신하는 '이상적인 노동자'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뭐든 다 해줘야 한다는 '이상적인 엄마'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자질구레한 일에서 관심을 거두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해 접근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덴마크의 사례처럼 개인이 일과 가사를 병행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보육 시설)을 닦는 것과, '일·가정 양립'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주석을 빼더라도 455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시간 부족과 바쁨에 대한 현대인의 모든 고민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사회와 문화를 주로 다룬다는 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바쁜 한국인에 적용해도 크게 어긋나진 않을 듯하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