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법정관리라는 가장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됐다.정부가 기아의 화의요청을 거부하고 당사자인 기아나 자동차업계가 원하지 않는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그의 시장논리를 뒤집고 강경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기아문제로 기아와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갑자기 직접 챙겨들고 그것도 전격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기아해법은 기아자동차를 법정관리로 넘기고 산업은행의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 정상화될 때까지 공기업 형태로 운영하되 이후 처리는 다음 정권에 맡긴다는 것. 또 아시아 자동차는 법정관리 후 제3자에 매각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가 그 동안 남의일 처럼 방관하던 자세에서 직접개입으로 급선회한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기아사태로 인해서 총체적 경제위기가 촉발됐기 때문에 본질문제의 해결없이 추락하는 경제를 돌이켜 세울 수 없는건 분명하다.
기아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기업연쇄부도, 금융시장혼란, 환율과 금리폭등, 대외신인도 하락, 주가폭락 등 경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더 이상 기아문제를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법정관리라는 강경책이 기아해결의 순리는 아니다. 기아 살리기의 최선책이 못되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법정관리는 정부와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채권단이 처음부터 추진해온 방법이어서 새삼 놀랄 것은 없지만 시나리오대로 끌고 가고 있다는 의혹에 무게를 더해준다. 법정관리는 제3자 인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치고 정상화가 된 예가 별로 없다. 제3자에 매각한다 해도 채권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채권금융기관의 부담만 늘어난다. 화의를 요구했던 기아측의 반발도 큰 문제거리다.
그러면서도 실기했다. 시나리오대로 갈 것이면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시간을 끌지 말았어야 했다.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러서야 초강수를 둠으로써 국가와 국민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됐다.
기아의 법정관리는 형평성에 어긋난다. 어느 기업은 협조융자를 하고 어느 기업은 화의를 받아들이면서 유독 기아만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부실기업처리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원칙과 기준이 정부 입맛대로다.
기아를 공기업 형태로 산은이 운영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관리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공기업민영화 정책과도 배치된다.
특히 마치 극비작전을 하듯 법정관리를 전격 결정하고 깜짝쇼하듯 서둘러 발표한 뒷배경이 아리송하다. 최근 정치권의 기류와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급박한 사안이라면 부도유예협약 종료후 한달 넘게 뒷짐지고 있었던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정부는 법정관리 선택과 여기서 유발되는 부작용과 후유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기아사태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다. 기아와 기아노조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 파장은 자동차 업계를 넘어 전산업과 정치에까지 미칠 수 있다.
또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도 예감된다. 이는 더 큰 파문으로 이어질 민감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