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별 적자상황=대형은행들의 적자폭이 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선·후발은행간 손익구조의 양극화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초대형은행인 한빛이 1조원 이상을, 조흥·외환은행 등도 5,000억원에 가까운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제일·서울은행은 적어도 올해까지는 최대적자은행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두 은행에서만 5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후발은행도 마찬가지. 매년 은행권 적자규모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후발은행들이 상당폭 흑자를 낸데 기인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하나·한미은행이 1조원이 넘는 대우여신을 보유하며 손실을 입었고, 신한은행도 국제기준 아래 충당금을 쌓으면서 이익규모는 기껏해야 1,000억원을 밑돌게 됐다.
물론 은행권의 이같은 적자규모에 대해 감독당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아직은 은행권 적자규모 확정에 변수로 남아있기는 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감독당국이 충당금 적립을 내년으로 분산, 적립토록 요구할 경우 은행권의 적자규모는 은행 자체적으로 추산하는 것보다 다소 줄어들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부실을 미래로 연장시키는 결과밖에 낳지 못한다.
◇대규모 적자배경=은행들이 대규모 적자의 원인으로 표면 위에 내세우는 것은 단순하다. 충당금을 가능한 최대로 쌓아 올해 털 것은 모두 털어버리겠다는 것. 대형시중은행들은 2조원 안팎, 후발은행들도 최대 1조원 가까운 대손충당금을 쌓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내년을 「클린뱅크 원년」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은행들이 과연 충당금을 솔직하게 쌓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조흥은행의 경우 임원들끼리의 얘기도 다르다. 이강륭(李康隆) 부행장은 연말 적자가 1조원은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반면, 조원증(趙瑗增) 상무는 5,000억원에 못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결산에 대해 고위급 임원끼리도 고무줄 잣대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적자를 낸데는 증권시장이 의외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몫을 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하반기 적지않은 유가증권 평가손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래손익상황도 암울, 현실화되는 추가공적자금 투입=은행권에 대한 추가공적자금 투입은 이제 대세로 인식되고 있다. 10억달러의 DR발행에 실패한 외환은행이나 발행시장에 나갈 엄두도 못내고 있는 조흥은행 등이 추가 세금투입 대상으로 유력하다. 연말 대규모 적자는 공적자금 투입에 또다른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내년 은행권의 손익구조는 은행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장밋빛으로 분칠해져 있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은행들은 지금 돈빌려줄 데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부채비율 맞추기에 급급한 대기업들은 은행에 돈을 갚는 대신 유상증자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남은 활로는 우량 중소기업인데 제한된 파이를 놓고 서로 싸우다보니 이익 구조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은 내년에도 지속될게 분명하다. 대우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은 현재 1차 작업에 불과하다. 정밀 실사 후 또한번의 채무조정 작업이 불가피하고, 이때 2차 출자전환 등의 작업과 함께 손실발행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들이 외치는 것처럼 「클린뱅크 원년, 2000」이라는 구호가 환하게 울릴 수 있을지는 아직도 시계(視界) 제로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