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노무현의 대의명분

부시 미국 대통령이 18일 이라크에 최후통첩을 발표함에 따라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은 이제 코앞에 닥쳤다. 전쟁을 시작할 때 선제공격의 효과를 포기하면서 최후통첩이라는 사전경고의 사인을 보내는 이유는 대의명분을 얻기 위해서다. 이라크 전을 강행하면서 지구상에서 테러를 뿌리뽑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대외적인 명분이다. 엄청난 전쟁일수록 내세우는 명분만은 흔히 당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과 이라크 전은 외교적 노력과 명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국가의 컨센서스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세상은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전의 궁극적인 목적이 석유확보와 지역 패권주의라는 사실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전쟁에서도 진실은 실종되고 미국과 이라크간에는 거짓과 흑색선전만이 난무할 게 뻔하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 엄청난 변화의 속도로 멀미가 날 지경이다. 대통령과 평검사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을 붉히며 토론회를 벌이는가 하면 대통령 입에서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권위와 격식이 파괴되는 현장도 목격하고 있다. 새정부가 좌우살피지 않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정책과 언론개혁도 명분은 분명하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확보와 부의 대물림 방지,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가 아닌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재벌개혁과 언론개혁의 명분이고 핵심이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는 개혁 드라이브로 국내 재벌기업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상당히 불안한 모습이고 언론계 역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새정부의 개혁정책들이 장ㆍ단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거나 언론 본연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국민의 알권리 제공이라는 의무에 중대한 훼손을 가지고 온다면 그 명분은 이미 가치를 잃은 것이다. 명분이 집단 전체의 이익이나 실상에서 차츰 벗어나 한 개인의 잘못된 소신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될 경우 실제 과정도 점차 강제성을 띠고 원성을 사는 결과를 빚게 마련이다. 따라서 재벌개혁이나 언론개혁 등 어떤 명분도 사회적 합의없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일방적으로 군림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전 세계인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박민수(산업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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