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핫이슈] 저금리ㆍ弱달러 지속돼도 美 ‘블랙먼데이’는 없을듯

최근 미국경제는 감세ㆍ저금리ㆍ달러약세의 효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3ㆍ4분기 성장률은 무려 7.2%에 달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달러약세와 저금리 국면이 양립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 1987년 블랙먼데이의 전야와 비슷한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옛 격언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옛일을 되짚어 보는 것은 앞날을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02년부터 시작된 최근의 달러약세 국면은 1985년 프라자 합의와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프라자 합의부터 1987년 블랙먼데이까지 달러화 가치는 수직 하락했다. 1985년 9월 147.6달러에서 1988년 4월 97.7달러까지 33.8% 평가절하됐다. 약 2년 반에 걸친 강력한 달러약세 정책은 무역수지를 크게 개선시키고 성장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대성공이었다. 프라자 합의 당시 FRB는 달러약세 유도 및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해 1985년 10월 8.00%이던 정책금리는 1986년 9월 5.875%까지 떨어져 불과 1년 만에 215bp의 금리인하가 단행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경제는 1985∼87년 연평균 3.8%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공급과잉 상황이 유지되고 있었기에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지 않았으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던 것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 그러나 경기회복의 초기국면이 경과해 수급 갭(Gap)이 메워진 이후에는 이런 선순환 과정이 더 지속될 수 없었다. 경제성장과 유동성공급 확대, 그리고 수입물가의 상승은 물가불안을 유발시켰다. 잉여설비가 아직 존재하던 1985∼86년에는 3%대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달러약세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1987년부터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했다. 특히 1987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3%까지 상승한 것은 추가적인 `금리인상`에 대한 예상을 불러일으켜 블랙먼데이의 직접적인 발생 요인으로 작용했다. 블랙먼데이 발생 1년 전인 1986년 말 이미 FRB는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으며, 1987년 10월까지 총 6회 113bp의 정책 금리를 인상했다. 정책금리의 인상은 미 국채와 기타 선진국 국채 간의 금리차를 좁혀 잠재적인 달러 매수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으며,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미 국채를 매입해 왔던 유럽과 아시아 중앙은행의 미 국채 매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유럽과 아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중단과 그 뒤를 따른 미 국채 매도로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은 단기적인 패닉에 빠져들었다. 이상과 같은 1980년대 중렸캣鳧?경험은 최근 장세를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시아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매입에 힘입어 저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점과 잉여 설비 덕분에 아직 본격적인 물가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프라자 합의 직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그렇다면, 향후 세계 주식시장은 블랙먼데이의 위험을 잉태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이 질문에 대해서는 `노(No)`라는 답변이 맞는 것 같다. 중국경제의 대두에 따라 전세계 공산품 가격의 하향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아직 미국의 공장가동률이 72% 수준으로 상당한 잉여설비가 남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9월 무역수지가 다시 악화되는 등 달러약세의 압력은 여전히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FRB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핵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2%에 그치는 등 경제전반의 물가안정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그 시기는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고성장 저금리라는 현상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지만, 아직은 블랙먼데이와 같은 심각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 <홍춘욱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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