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수상이 지난 12일 전화 통화를 했다. BP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가 장기화하면서 양국 여론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자 정상 차원의 조율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낸 BP의 늑장 대응에 분노하면서 BP를 무책임한 기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영국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자국의 최대 기업을 공격하는 것을 놓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포퓰리즘 또는 맹목적 애국주의 운운하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론 전쟁은 올해 초 도요타 리콜 사태와 오버랩된다. 당시 일본 여론이 ‘도요타 때리기’라며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사건을 보는 미국의 여론은 달랐다. 미국 여론은 처음부터 도요타를 부실을 은폐하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고 갔지만 BP 사태에 대해서는 원유 차단 등 사고 수습에 포커스를 맞추는 관대함을 보였다. 뉴저지 소재 도요타 매장의 한인 딜러는 “미 교통당국의 수장은 원인도 규명되기 전에 ‘도요타를 몰지 말라’고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BP 사태를 한달이 넘도록 방관하다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고서야 BP를 닦달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고 2개월 만에 보상금 협의라는 명분으로 BP 회장을 16일 백악관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반면 리콜 파문 1개월 만에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공개적인 망신과 수모를 겪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캐머런 수상과 통화한 것도 영국 수상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의 성격이 짙다.
도요타 사태 때 흥분한 미 여론과 달리 월가는 차분한 평가를 내렸다. 도요타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 하락은 5% 내외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월가는 BP의 파산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제기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와 석유 회사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고 사안의 성격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사태의 파괴력을 본다면 도요타는 필요 이상의 매를 맞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두 사안의 제3자인 한국인의 눈에 왜 이런 차이가 느껴질까. 미국의 자존심인 자동차 ‘빅3’의 몰락에 대한 패배 의식과 누적된 열등감, 보호무역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믿고 싶다. 만약 뿌리가 같은 영미 기업과 아시아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래서 질문을 던져본다. 도요타와 BP에 견줄 만한 한국의 간판 기업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낸다면 미 대통령이 BP를 향해 그랬듯 “그 기업은 다국적 기업이며 미국에도 중요한 기업”이라고 여론을 달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