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일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설정과 관련, "최대한 야심 찬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상 정부가 현재 논의 중인 감축 시나리오를 사실상 파기하라는 압박으로 파문이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연기와 관련된 통화에서의 발언이지만 이달 말 온실가스 감축안 제출을 목표로 준비 중인 정부의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수정 요구로 해석하고 있다. 양국 정상 간 통화라는 점에서 최대한 외교적인 수사를 사용했지만 발언의 시기나 표현 등에 있어서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충분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부의 '포스트 2020 온실가스 감축안'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지만 '야심 찬 목표'나 '리더십'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우회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11일 정부부처 합동발표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제사회에 선언했던 오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안을 폐기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과거에도 미국은 민주당이 집권하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기본 스탠스"라며 "오마바 대통령이 정부가 발표한 네 가지 감축 시나리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한 약속(2020년 20% 감축)을 폐기한 데 대한 유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 정부나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를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 논의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보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우리를 앞장서서 리더십을 발휘해줘야 할 선진국이자 동반자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미 발표한 1~4안이 과거 2020년 20% 감축보다 후퇴한 것이지만 산업계 부담과 온실가스포집기술 등 현실적 상황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온실가스 절감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밝힌 만큼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이달 중 유엔에 제출할 방침이다. 다만 미묘한 기류도 포착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양국 정상들의 언급에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2030년 감축 목표치를 더 높은 수준으로 잡고 2020년 30% 감축 목표치를 지켜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선 탄소배출권거래소 연구소장은 "오바마 대통령 발언의 파문이 작지 않을 것 같다"며 "정부가 약속한 만큼 국격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놓을지 현실적인 결정을 하고 미국 등 선진국을 설득해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