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발행 어음만기 4·5월에 대거몰려/회사채 발행물량 억제도 뇌관으로 작용/은행 대외신인도 떨어져 해외차입 차질시중에 통화는 많이 풀려있는데 부도업체수는 크게 늘고 있다. 당국의 채권발행물량 억제로 회사채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은 다른데서 돈을 구해야할 입장이다.
한보와 관련, 이미 부도가 난지 한달여가 지났는데 한보계열사들이 발행한 어음의 부도신고는 계속 늘어 5일 현재 부도신고금액은 6천44억원에 이른다. 한보가 부도직전에 집중적으로 발행한 어음의 만기가 오는 4,5월에 대량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보사태가 두고두고 자금시장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3월말 결산을 앞두고 BIS자기자본 관리를 위해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신용공여 규모를 줄임에 따라 국내 은행들의 외화조달은 더욱 어려워져 국내외에서 자금시장의 교란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이같은 요인들을 중시, 조심스럽게 「자금대란설」을 언급하고 있다. 금융권내에 누적된 자금교란요인들이 일시에 폭발, 엄청난 자금경색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MCT(총통화+ CD+신탁계정) 의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18.8%로 전월에 비해 0.3%포인트 높아졌고 M2증가율은 처음으로 MCT증가율을 추월, 전년동기대비 19.6%로 급등했다.
한은은 M2지표의 효용성이 상당부분 상실된 상태고 MCT증가율은 관리목표대 내에 있기 때문에 통화관리는 무난히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통화증가율이 다소 높아진 것은 설자금수요와 한보부도이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통화당국의 신축적 통화공급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의 동맥경화증은 심각한 상태다. 시중의 유동성자금이 자금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들로 수혈되지 못하고 금융권내에서만 맴도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보다는 콜이나 채권으로 자금을 운용함에 따라 제도권금리는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지난 4일 하루동안에만 부도를 낸 기업은 법인과 개인을 합해 1백50개를 넘었다. 매월 2영업일에 부도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부도업체수가 하루동안 1백50개를 넘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게 금융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3월중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기업들이 신청한 금액은 사상최대규모인 3조8천9백78억원에 달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채권수익률이 급등하자 기채조정협의회는 자동적으로 발행이 허용되는 특례분(3조6천1백8억원)에도 훨씬 못미치는 3조7백42억원만을 허용했다.
신청분에 비해 8천억원 이상 줄어든 것이다. 일부는 자금을 미리 조달하려는 가수요라 하더라도 회사채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은 결국 어디선가 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채권발행물량 억제는 자금시장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더구나 한보철강이 부도직전 발행한 어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추정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어음의 만기가 대거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4, 5월에는 기업들의 본격적인 설비투자 자금수요와 맞물려 자금시장의 경색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만 문제가 아니다. 은행들도 한보사태의 여파로 대외신인도가 크게 떨어져 해외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금융기관들이 3월말 결산을 앞두고 BIS자기자본비율의 관리를 위해 기존의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신규대출을 꺼리고 있어 국내 은행들은 외자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이같은 국내외적인 자금시장의 교란요인들이 오는 4, 5월에 집중될 것으로 보여 통화당국의 적절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김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