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 '우승보다 값진 2위'

버라이즌헤리티지 최종
연장전서 룰 위반 자진신고
퓨릭 정상… 최경주 41위

브라이언 데이비스


사소한 룰 위반 사실만 '자진신고'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잃었던 내기 돈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 과연 당신의 선택은. 브라이언 데이비스(36ㆍ잉글랜드)는 생애 첫 우승 대신 양심과 명예를 택했다. 19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 아일랜드의 하버타운 골프링크스(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버라이즌헤리티지 최종일 경기. 데이비스는 정규 최종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짐 퓨릭(미국)과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동률을 이루며 극적으로 연장전에 진출했다. 18번홀에서 치른 첫 번째 연장전에서 데이비스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왼쪽으로 보냈다. 볼은 해저드 지역의 풀이 듬성듬성 난 곳에 놓였고 쉽지 않은 웨지 샷으로 그린에 올려 갤러리의 박수를 받았다. 홀과의 거리는 7m가량으로 가깝지 않았지만 퓨릭 역시 2m 남짓한 파 퍼트를 남겨 뒀기 때문에 충분히 두 번째 연장전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경기위원을 불렀고 "세 번째 샷 백스윙 때 웨지에 갈대가 닿아 움직였다"고 털어놓았다. 경기위원은 데이비스와 상의한 뒤 2벌타 판정을 내렸다. 이후 다시 보여준 방송 화면에서 백스윙 때 죽은 갈대가 웨지 헤드에 닿아 살짝 움직이는 장면이 확인됐지만 데이비스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대목이었다. 골프규칙 13-4는 벙커나 해저드 내, 또는 해저드 구역 안에서 볼을 때리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해저드 안의 지면이나 풀ㆍ돌ㆍ나뭇잎에 클럽헤드를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2벌타가 부과된다. 결국 파 퍼트를 넣은 '8자 스윙' 퓨릭이 시즌 2승이자 통산 15승(우승상금 102만6,000달러)째를 거뒀다. 지난 2005년 미국 무대에 데뷔해 아직 우승하지 못한 데이비스는 2위 상금 61만5,600달러를 받아 생애 첫 우승의 기쁨과 약 5억원(41만400달러)의 돈을 포기했지만 양심을 지킬 수 있었다. 싱겁게 정상에 오른 퓨릭은 "내가 원했던 식의 우승이 아니다"라며 "힘든 결정을 내린 데이비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한다"고 칭찬했다. 18번홀의 별명은 '등대 홀'이다. 첫날 선두에 나섰던 최경주(40)는 공동 41위(2언더파)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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