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등 안먹혀… 개인 잠자는 돈까지 동원

■ "루피화 추락 막아라" 인도 '애국채권' 검토
유동성 위기 치닫자 경상적자 완화 위해 금 수입규제책도 내놔
부채리스크 개인에 전가 "경제여건 더 악화" 지적


인도가 10여년 만에 '애국채권'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은 정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인도가 사실상 유동성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방증한다.

애국채권은 과거 현금부족에 시달린 각국 정부들이 애국심에 호소해 개인에게 채권을 판매하면서 등장했다. 인도는 아시아 신흥국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지난 1998~2000년 국외거주 인도인을 상대로 애국채권을 발행한 적이 있으며 근래 들어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지방자치단체 및 아일랜드 등에서 선보였다.

로이터통신은 "경제회복을 위한 갖가지 수단이 불발되며 인도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인도의 자금사정이 결국 개인자금에까지 의지해야 할 정도임을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인도는 23일(현지시간) 루피화 하락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경상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금 수입규제 대책도 내놓았다. 내수시장에 금 공급을 줄이기 위해 각종 공식 금수입업자들에게 금소매상이나 딜러에게만 금을 판매하도록 판매처를 제한했다. 금을 좋아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막대한 외화가 금 수입대금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인도 정부가 이처럼 '비상 카드'를 쏟아내는 것은 미국의 출구전략 로드맵이 공개된 5월 말 이래 등장한 금융대책들이 좀처럼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외자금 의존도가 높은 인도에서는 5월 말 이래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만 115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되며 유동성 위기조짐이 가속화하고 있다. 자국통화인 루피화 가치는 지난달 이후 15% 넘게 하락했고 6월 경상수지 적자도 역대 최고 수준(-4.8%)으로 급증하며 외자이탈을 부채질했다.

인도 정부는 자금유출 흐름을 막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루피화 가치 하락세가 증폭된 지난달 11일 국영은행들에 달러매도를 지시하며 우회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같은달 15일에는 유동성 채널을 소진한 은행에 중앙은행이 적용하는 대출금리와 레포 등 정책금리를 각각 10.25%로 상향 조정했고 20일부터는 간헐적으로 달러를 풀며 시장에 직접 개입했다. 하지만 루피화 가치는 지난달 26일 시장의 마지노선(달러당 60루피)마저 넘어서며 환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인 달러당 60.73루피로 떨어지는 등 시장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단기적인 루피화 가치하락 외에 인도 정부가 안고 있는 더 큰 두려움은 경제둔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자금유출 사태를 빌미로 인도 경제의 취약성이 집중 조명되며 외자이탈의 근본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도의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4.8%에 그쳤고 올해 전체 성장률도 5% 내외의 둔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인도 정부가 해외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촉진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인도시장에서 발을 빼는 '엑소더스'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2주 사이에만도 월마트ㆍ버크셔해서웨이ㆍ포스코ㆍ아르셀로미탈 등 굵직굵직한 다국적기업들이 인도 투자를 철회했고 지난달에는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가 자산운용 및 상업은행 사업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검토 중인 애국채권 발행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 정부가 검토 중인 애국채권 발행이 장롱 속 개인의 '잠자는 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기관 및 해외투자가도 외면하는 부채 리스크를 개인들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국가경제 여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경제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장기적인 투자금 유입이 가로막힐 것으로 보여 정부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며 "인도가 개인의 숨은 돈까지 끌어 모으는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경제회생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