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지는 싸움'이라는 것이 있다. 명량해전이 딱 그랬다. 조선의 함선 수 13척, 일본은 133척. 조선 수군 120명 남짓, 일본 수군 3만여명.
이처럼 모든 것이 상대방보다 열악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그리고 이겨야 한다면 지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압도돼 미리부터 패배 이후를 대비한 변명거리를 찾기에 바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지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힘은 분명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있었다.
조직을 맡아 운영하는 리더에게는 머리를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혁신하고 경쟁력을 높여 조직을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다. 필자 또한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고 영화 '명량'을 본 것도 그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혁신,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조직의 흐름을 바꾼 혁신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의 해법은 확연히 달랐다. 늘 해왔던 방식이라면 누가 봐도 지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축'을 세워 색다른 전쟁을 시도했다. 울돌목이라는 지형의 축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곳은 물살이 빠르고 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은 관행적 방식이고 지금도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한다"고.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나 그런 환경을 고려하지만 "그래서 뭐?"라는 물음에는 답을 못 내놓는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속 발상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창조적이다. 당시 해전은 적선에 접근해 선상에 기어올라 가서 승부를 결정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우리의 장점인 천자총통을 활용하기 위해 함포전을 생각해냈다. 또 판옥선상에서 포를 쏠 때 튀어나오는 쇠못 대신 팽창계수 차이로 수중에서 더 단단해지는 참나무 못을 고안해낸 것도 섬세한 전략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조선 수군의 가장 치명적 단점인 적은 숫자의 함선과 수군에 대한 해법이었다. 수많은 함선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못하고 몇 척씩 통과할 수밖에 없도록 울돌목으로 유도했다. 그 결과 일본 수군의 최대 장점인 많은 함선과 수군은 무의미해졌다. 동시에 병목 지역을 통과한 함선이 한꺼번에 몰려들 것에 대비해서 수백발이 한번에 날아가는 조란환을 개발했다.
이순신은 함선의 측면을 보이면 적군에게 공격당하기 쉽다는 약점 때문에 잘 활용하지 않았던 일자진 전법(군함 13척을 일렬횡대로 쭉 늘어 세워 맞서는 전법)을 과감하게 수용했고 왜군에 집중 포격하는 합력사살 전법(현자총통과 지자총통 등을 발사해 기동력을 마비시킨 후 조란환이라 불리는 새알 크기만한 쇳덩어리를 한 번에 100~200개씩 집중 발사하는 전법)까지 고안해냄으로써 순간의 전력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장면은 소름 끼칠 정도로 감동적이다.
만약 이순신이 기존의 승리요소만을 고려해 함선 수와 수군 수를 늘리고 접근전 방식을 고수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필자는 이 대목에서 깊이 자기 성찰을 해보았다. 지금은 빡빡한 현실과 찌들어진 세상만을 탓하며 이순신을 내세워 대리만족을 느끼고 로맨스만 꿈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새로운 혁신의 축을 생각하고 새로운 혁신의 공간을 정의해서 새로운 항해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순신은 창조경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400년 전 명량에서 메시지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