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자폐증 치료한다

"치료사 부족 해법 찾자" 美 USC연구팀 개발 박차
초기실험 결과 상당수 자폐아 사회성·언어력 향상
소통능력 개선 등 문제점 보완 2020년께 상용화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의 마사 마타릭 박사가 밴디트와 '똑같이 따라하기' 놀이를 하고 있다.

미래에는 밴디트 같은 휴머노이드들이 부모를 대신해 24시간 자폐아를 돌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휴머노이드 로봇

애완동물 로봇

스트레스 감지 밴드

전세계 자폐증 환자는 3,500만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아동 환자의 증가세는 무서울 정도다. 10여년 전만 해도 어린이 1만명당 1명이 자폐아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100명당 1명 수준으로 100배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자폐아를 지속적으로 간호하고 치료할 전문 치료사 부족이 심각한 상태다. 최근 이 같은 난제를 해소할 해결사로 주목 받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치료효과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의 한 연구실. '밴디트(Bandit)'로 명명된 귀여운 휴머노이드 로봇이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 아동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아이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자 밴디트는 접근을 멈춘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다가오라며 손짓을 한다. 그러자 아이가 호기심 섞인 모습으로 밴디트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자폐아와 휴머노이드라의 만남은 USC 로봇공학연구실의 마사 마타릭 박사팀이 진행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자폐아들의 사회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자폐증 치료 로봇 개발이 연구의 목표다. 초기실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5~9세의 자폐아 14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자폐아들은 평균 5분이나 밴디트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했다. 게다가 실험 이후 상당수 아이들에게서 사회성과 언어력 향상이 나타났다. 이는 웬만한 인간 치료사들을 투입했을 때보다 뛰어난 성과다. 통념상 기계장치인 로봇과 사회성ㆍ소통 등의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폐아들은 인간보다 오히려 로봇에게 더 친근한 반응을 보이며 기대 이상의 상호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로봇의 단순한 행동 패턴에서 원인을 찾는다.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없는 자폐아들은 그런 환경에 처해지는 것을 꺼려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리는데 일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은 그만큼 예측도 쉬워 한층 편안하게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타릭 박사팀이 자폐증 전문치료사의 극심한 부족현상을 메울 해법으로 휴머노이드에 주목하고 치료 로봇 밴디트 개발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과 이어주는 가교 프로토타입 모델인 밴디트는 아직 상반신만 휴머노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 부위에 삽입된 스테레오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로 자폐아의 위치를 파악해 이동할 수 있다. 자폐아와의 소통을 위해 간단한 손동작과 표정을 통한 감정표현이 가능하며 똑같이 따라 하기, 비눗방울 놀이 등 사회성 증진에 도움이 되는 간단한 게임을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자폐아의 말을 스스로 알아듣고 반응하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이 밴디트가 촬영한 실시간 영상을 보며 그에 맞춰 로봇을 조종해줘야 한다. 이에 연구팀은 장기적으로 밴디트가 자폐아의 행동에 맞춰 한층 복잡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치료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의 강도와 빈도를 점진적으로 늘려 현실세계에 대한 자폐아들의 적응력을 높여나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연구팀은 인공지능, 기계시각, 신호처리 기술 등 현대 로봇 기술을 총동원해 자폐아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섬세한 대응능력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자폐아가 몸을 앞뒤로 흔들면 불안감의 징후임을 파악해 적절한 교정작업을 수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같은 불안감 해소 능력 없이는 최적의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타릭 박사는 밴디트가 이런 능력을 갖추면 자폐아에게 사회성과 사교술을 습득시켜 성인이 돼서도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자폐아 치료에서 밴디트 같은 휴머노이드가 제공하는 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치료사 부족은 대도시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자폐아들의 치료기회 박탈로 이어질 수 있는데 휴머노이드 치료사가 활성화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음악요법ㆍ놀이요법ㆍ역할극 등 치료기법에 맞춰 여러 전문가들이 동원돼야 했던 지금과 달리 휴머노이드 하나로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어 치료효과 극대화도 가능하다. 로봇에 대한 호의와 기피 특히 휴머노이드 치료사의 존재는 자폐아 부모들의 삶의 질 개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정 내에 전문치료사가 상주하는 효과를 내 부모가 하루 종일 아이 뒤를 쫓아다닐 필요가 없는 것. 물론 그렇다고 휴머노이드가 만능은 아니다. 인간 치료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기치료의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또한 일부 자폐아들은 로봇에게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는 점도 난제로 남아 있다. 이는 밴디트 실험에서도 발견됐다. 대부분의 자폐아는 밴디트와의 교류에 흥미를 보였지만 몇몇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아예 밴디트 근처에도 가지 않고 무조건 회피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부모와의 의사소통조차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저기능 자폐아에게서 두드러졌다. 만일 인간 치료사였다면 거부감을 보이는 아이에게 좀 더 부드럽게 말을 걸거나 접근속도를 천천히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겠지만 밴디트는 그러지 못했다. 휴머노이드가 자폐증 치료사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한계의 극복을 위한 첫 단계로 마타릭 박사팀은 USC 신호처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자폐아의 표정, 제스처, 목소리 톤의 변화를 해석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밴디트가 자폐아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기술이 개발되면 상황별로 밴디트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찾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2020년께 1,000달러에 상용화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오는 2020년께 밴디트 상용모델을 출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속도를 감안하면 이 기간 동안 자폐아와 완벽히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밴디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공급가격은 요즘의 노트북 한대 값 정도를 지향한다. 대당 최대 1,000달러를 넘기지 않을 방침이다. 자폐아 부모들은 이미 경제적 부담이 크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마타릭 박사가 상용화 시점을 넉넉히 잡은 것도 사실 이 때문이다. 고가의 부품과 첨단기술을 채용하면 조기 상용화도 가능하지만 이때는 판매가가 수천달러를 상회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낮은 부모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마타릭 박사의 지향점과 상반된다. 그는 현재 밴디트의 사교능력 개선과 자폐아 심리분석 능력 확보 등에 주력하는 한편 이것이 자폐아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 작업을 거쳐 금명간 밴디트의 치료효과를 객관적이고 계량화된 데이터로 산출해낸 뒤 올 여름께 대규모 임상연구에 돌입할 계획이다.
신개념 자폐증 치료기기

① 휴머노이드 로봇 영국 하트퍼드셔대 연구팀이 자폐증 치료용 휴머노이드 '카스파(Kaspar)'를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에는 살짝 찌르는 약한 자극도 감지하는 예민한 인공피부가 채용될 예정이다. ② 애완동물 로봇 유럽 지역 연구팀들이 공동 추진하는 '아이로맥(IROMEC)' 프로젝트를 통해 자폐아들과 협동놀이를 할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됐다. 동물 모티브로 외관을 제작해 친근성을 강화했다. ③ 스트레스 감지 밴드 미국 어펙티바사가 개발하고 있는 스트레스 감지 손목 밴드. 센서가 자폐아의 체온ㆍ움직임ㆍ발한(發汗) 등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PC로 전송해 스트레스를 분석한다. 이 정보를 로봇에게 전달해 불안감을 해소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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