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보석' 충남 태안 가의도, 쪽빛 바다·금빛 모래… 청정 되찾은 신장벌

동정 지켜온 450~500년 은행나무들 장관… 500m 전망대 오르니 가슴이 뻥
빽빽한 숲길 헤치면 눈부신 400m 백사장·해안선 옆 운치있는 '소솔길'은 덤

가의도는 6쪽 마늘의 종구가 생산되는 섬으로 유명하다.

길이가 400m쯤 돼 보이는 신장벌 백사장은 파도에 마모된 돌멩이들이 모래와 뒤섞여 있다.

가의도 앞다바에서 낚아온 우럭. 얼핏 보기에도 40㎝는 돼 보이는 큰 놈이다.

"뱀이 나올지 모르니 앞장 서세요. 그리고 가의도에 가서도 뱀 조심하세요."

충청남도 태안군 가의도 기초 취재를 위해 만난 정경자 해설사가 안흥성을 둘러보면서 기자에게 말했다. 뱀에 안 물리려고 나를 앞장 세웠으면서 가의도에 가서 조심하라는 건 무슨 배려인가? 그런데 가의도에 도착해서 만난 김희연 이장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신장벌' 백사장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김 이장이 충고를 했다. "내가 지금 바빠서 섬 안내를 해줄 수 없으니 혼자서 돌아다녀 봐. 그런데 뱀 조심혀. 구렁이는 아침·저녁으로 다니지만 낮에 돌아다니는 건 살모사여."

그래서 기자는 땅에 떨어진 막대기를 하나 주워서 심봉사처럼 땅을 두드리면서 전진했다. 순전히 뱀을 쫓기 위해서 그랬다. 그런데 뱀은 안 보이고 숲이 우거져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대낮인데도 빛이 안들어와 어두컴컴했다. 목에 카메라를 걸고 오른 손에 막대기를 짚고 왼손으로 나뭇가지를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신장벌에 도착해서 보니 수풀을 헤치던 왼쪽 팔뚝이 풀에 베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평일이라서인지 한낮에 도착했는데도 가의도는 적막했다.

그래도 섬에는 40가구, 7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김 이장은 "마을주민은 70명밖에 안 되지만 주말이 되면 낚시꾼들과 관광객 등 100~200명이 몰려든다"며 "이 사람들을 상대로 20여가구가 민박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적막한 가의도에서 사람들 대신 기자를 처음 맞아준 것은 수령 450~500년 사이로 추정되는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는 암·수나무 간에 수정이 돼야 은행열매를 맺는데 가의도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살임에도 평생 동정을 지켜 온 불쌍한 처녀나무다. 섬 안에 수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서방에게 시달리지 않은 탓인지 나무는 5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쌩쌩해 보였다. 처녀의 자태는 완연했지만 생긴 모습은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은행나무를 지나 50m를 더 올라가면 남항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 섬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10분 정도면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높이라야 해발 183m에 불과해 누구나 쉽게 올라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가의도는 동경 126°06′, 북위 36°41′지점, 근흥면 안흥항으로부터 서쪽으로 5㎞ 지점에 있다.

한때 유조선 좌초로 오염됐지만 이제는 기름때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옛 모습을 되찾은 국립공원인 태안반도 내에 있는 작은 섬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이 섬은 면적 2.19㎢에 해안선 길이는 10㎞에 불과하다.

가의도라는 이름은 옛날 중국의 가의(賈誼)라는 사람이 이 섬에 피신해 살았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 섬이 신진도에서 볼 때 서쪽 가에 위치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가의도 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길을 따라 300m 정도 올라가면 마을회관이 있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1㎞ 남짓 걸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소솔길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 1㎞쯤 더 가면 신장벌이라는 백사장이 나온다. 소솔길이라는 이름은 운치 있는 오솔길을 연상시키지만 한 사람이 간신히 비집고 지나갈 만한 산길이다.

이 빽빽한 숲길을 헤치고 2㎞ 정도를 걸어가야 신장벌이 나온다. 길이가 400m쯤 돼 보이는 신장벌 백사장은 파도에 마모된 돌멩이들이 모래와 뒤섞여 있다. 백사장을 따라 동쪽 끝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치형으로 생겨 독립문바위라는 별명이 붙은 암석이 있다.

신장벌을 찾아가는 것이 피곤한 귀차니스트라면 500m 정도만 걸어 오르면 되는 전망대나, 아니면 등성이만 넘으면 나오는 남항선착장을 다녀와도 좋다. 남항선착장은 비교적 최근에 건설돼 북쪽에 있는 가의도선착장보다는 규모도 훨씬 크고 잘 정비돼 있다.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직경 50m도 안 돼 보이는 조그만 섬이 소나무 몇 그루를 머리에 이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서해안 청정바다 위에 떠 있는 가의도산 전복·가시리·김·우럭·미역·홍합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생산량은 극히 적어 외부로 반출할 만큼 풍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섬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마늘이다. 가의도는 6쪽 마늘의 종구가 생산되는 섬으로 유명하다. 종구란 마늘의 씨앗에 해당하는 것으로 6쪽 마늘을 한 개씩 분리해 땅속에 심으면 이듬해에 구슬 같은 한쪽 마늘이 생기는데 이를 종구라고 한다. 종구를 다시 한번 심으면 비로소 3년이 되는 해에 6쪽 마늘로 자라 수확할 수 있게 된다.

김 이장은 "가의도는 봄날씨가 유독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마늘이 바이러스 피해를 입지 않아 품질이 좋다"며 "태안군에서는 가의도에서 생산되는 마늘을 전량 수매해 전국 마늘 농가에 종묘로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의도에는 야생화도 지천이다. 복수초·노루귀·산자고 등 희귀한 봄꽃들과 더덕이나 방풍 등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나물들도 자생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차 이 섬에 와서 나물이나 꽃을 캤다가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태안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웬만하면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는 게 좋다. 가의도 바닷물은 서해답지 않게 투명하고 바닥까지 다 들여다보일 정도 맑아 해수욕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동네 할머니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 동안 동네 청년 한 명이 우럭 다섯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 중 한 마리는 40㎝는 족히 넘어 보였다.

김 이장은 "배낚시를 나가서 운이 좋으면 상괭이를 볼 수도 있다"며 "번식기인 요즘에는 눈에 잘 띈다"고 말했다.

/글·사진(가의도)=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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