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좋아 「잘 나간다」는 외국은행 지점의 지배인을 그만두고 레슨프로로 전향한 사람이다. 그는 96년8월까지 14년동안 영국·미국·호주계 은행에서 외환딜러로 일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환율과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안양베네스트GC 골프스쿨 팀장이다. 주니어 스쿨을 관리 운영하면서 제2의 박세리를 키울 꿈을 키우고 있다.『10년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10년 뒤에도 매일 피를 말려야 하는 그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을 생각을 하니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하고싶은일을 해야겠다 싶어 평소 그리던 골프로 진로를 바꾸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현태 팀장은 미련없이 사직했다.
물론 사직전에 몇년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89년 미국계 은행에서 일할 때 미국인 지점장의 권유로 골프를 배워 스스로 골프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또 주위에서 박세리같은 유망선수들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서 골프의 성장잠재력을 확신했다.
테니스, 축구, 야구 가릴 것없이 스포츠를 좋아했던 최현태 팀장은 머리 얹으러가서 104타, 입문 6개월만에 92타를 쳐 자질도 인정받았다. 베스트 스코어는 미국에서 기록한 2언더파 70타.
하지만 직접 선수로 나서기는 이미 늦은 일, 가르치는 일을 택하기로 했다.
최팀장은 그동안 외환딜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면서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골프티처(GOLF TEACHER)가 되자」고 다짐했다.
초보시절 레슨프로들이 궁금한 점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던 것도 최팀장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골퍼의 창의력을 무시한 채 볼만 치는 기계를 만드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또 연습장 구석에서 어린 학생들이 무조건 클럽만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팀장의 사직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였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다들 『정신 나갔느냐』고 말렸고 평소 아들자랑이 극진하던 어머니는 속이 상해 말을 잃었다. 반면 같은 직종에 있던 동료들은 『정말 잘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걱정했던 아버지도 골프분야의 잠재력에 선뜻 공감했다. 아내도 말없이 딸 둘과 함께 최팀장을 따라 나섰다.
『PGCC(PROFESSIONAL GOLFERS CAREER COLLEAGE)에서 2년동안 4학기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골프기술부터 골프심리학은 물론 코스디자인, 잔디관리까지 골프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배웠죠.』
현지에서 유명한 티칭프로인 데이비드 리드베터와도 교분을 쌓았다. 리드베터는 최 팀에 대해 『골프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지도능력도 뛰어나 훌륭한 골프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줬다.
이 추천서를 받은 곳이 바로 최팀장이 현재 일하고 있는 안양베네스트GC다.
귀국후 약 20일뒤부터 출근하게 된 이 곳에서 최팀장은 주니어골프스쿨 운영은 물론 연습장 관리까지 맡고 있다.
『스스로 원리를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팀장은 스윙의 원리 뿐만 아니라 연습을 해야하는 이유까지 주니어들이 직접 느끼도록 하는데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과 되도록 많은 대화를 나눈다.
『오래 걸리더라도 애정을 갖고 성의를 다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라는 최팀장은 『자질있는 제자들을 많이 발굴해 세계 정상급선수로 키워내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김진영기자EAGLE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