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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침체에 인력 남아돌아
덤핑수주등 시장환경 악화
설계산업진흥법 마련등
법률적 지원기반 절실 설계-시공 분리발주 해야
설계업계 경쟁력 높아져
20돌 '한국건축문화대상'
축제의 장으로 발전 시킬것 "이제는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건축을 고부가가치의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할 때 세계적 건축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건축설계시장은 업종 특성상 건설시장과 부침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건축물을 짓는 첫 단추가 바로 설계이기 때문이다. 최근 계속되는 건설ㆍ부동산 경기 침체가 건축설계시장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내로라하는 대형 건축사사무소마저 직원들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할 만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때문일까. 징검다리 연휴 전날인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건축사회관에서 만난 강성익(61ㆍ사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의 표정에서도 건축업계의 수장을 새로 맡았다는 기대보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고민이 느껴졌다. 2월에 취임한 강 회장의 첫마디도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협회장직을 맡게 돼 부담감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는 "30여년간 건축사로 일해왔지만 지금처럼 업계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업한 1만여명의 건축사사무소 중 60% 정도가 1년에 한 건 정도 설계를 할 정도라는 게 강 회장의 설명이다. "한 건을 설계하면 2,000만~3,000만원을 받는데 그 돈으로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이렇다 보니 직원 없이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건축사도 부지기수죠." 강 회장은 "주택 등 건설산업이 침체되다 보니 건축설계업계 역시 일감이 줄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설계비도 크게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설계비가 전체 공사비의 2% 수준으로 6~12%에 달하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가뜩이나 낮게 책정돼 있는데 여기에 과당경쟁까지 더해지면서 덤핑 수주까지 겹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제대로 요율만 적용해도 3.3㎡당 20만~50만원의 설계비를 받을 수 있지만 요즘에는 2만~3만원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 배출이 시장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동의했다. 강 회장은 "건축학과가 5년제로 개편된 후 이 체제로 전환한 전국의 대학이 79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학교당 40명씩만 잡아도 연간 3,000명의 인력이 건축시장에 쏟아져나오는 셈이다. "많은 건축사가 사회에 진출하지만 시장이 죽어 있다 보니 막상 나와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어렵게 자리를 잡더라도 대우가 열악하니 요즘은 전공을 바꾸는 학생들도 많은 실정이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학과가 공과대학 최고의 인기학과였다는 것이 이제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건축설계산업이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건축설계에 대한 사회의 근본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건축설계를 건설의 작은 부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됩니다." 건축을 창조적인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인식하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면 무한한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게 건축설계라고 그는 강조했다. 강 회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건축을 문화산업으로 지원ㆍ육성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와 건축물이 생겨나면 국격도 높아진다"며 "이를 위해서는 '건축설계산업진흥법'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강 회장이 회장 선거에서 내건 공약 중 하나가 바로 건축설계산업진흥법 마련이다.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것이 건축문화진흥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서비스산업인 건축설계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강 회장은 특히 "엔지니어링산업의 경우 정부가 5년간 1조8,000억원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지만 건축설계 분야에는 이 같은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너무 규제완화에만 치우친 건축 관련 정책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는 건축물 규모를 연면적 100㎡ 이하로 확대하면서 무분별한 건축행위가 늘고 있습니다. 강변이나 해안에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강 회장은 이와 함께 공공 발주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적 위주의 사전적격심사(PQ) 제도로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공공 발주 물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설계에만 수천만원 이상의 설계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고 유능한 건축사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PQ와 설계경기에서 실적증명ㆍ자격구비 요건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없애고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진 건축사나 실력 있는 아틀리에(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도 대형 프로젝트 설계에 참여해 보다 참신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건축을 단순한 경제논리로만 접근하는 최근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다. "최근 건축공사 발주가 설계ㆍ시공 일괄입찰의 턴키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사업이 대형 건설 시공사 위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설계가 시공에 예속되는 추세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설계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계와 시공이 분리 발주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강 회장은 건축물에 대한 관리체계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조차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지ㆍ관리를 하고 있는데 공공성이 강한 건축물 관리는 그냥 건물주에게 내맡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상 불법 증ㆍ개축 등 건물주의 무분별한 훼손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죠."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건축물 유지관리에 대한 전문가의 사후관리 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건축물이 미술작품 등과 다른 점은 싫든 좋든 일반인들에게 노출된다는 점"이라며 "소유권 자체는 개인에게 있지만 공공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중단된 대한건축사협회ㆍ한국건축가협회ㆍ새건축사협의회 등 건축3단체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3개 단체 통합이 건축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통합보다 더 선행돼야 할 것이 서로 다른 개별 건축사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협회가 보다 명실상부한 건축설계업계의 대표 단체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강 회장은 "현재 협회 회원이 8,200명인 데 반해 개업해 활동하고 있는 건축사는 약 1만2,000명에 달한다"며 "특히 젊은 건축사들의 참여가 낮은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서울시 건축사회의 경우 회원 중 45세 이하 비율이 채 10%도 안 됩니다. 젊은 건축사들의 참여가 낮다는 것은 협회 미래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나갈 것입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한국건축문화대상과 관련해 강 회장은 새롭게 도약하는 원년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서울경제신문과 대한건축사협회는 물론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이다. 1992년에 시작돼 올해로 20회째를 맞은 한국건축문화대상은 최근 완공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준공건축물 부문'과 학생 등 건축 신인 대상의 '계획건축물 부문'에 대한 2011년 작품 모집공고를 내면서 건축설계ㆍ시공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 회장은 "한국건축문화대상은 스무 돌을 맞는 동안 건축이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올해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건축이 일반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발전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두차례나 입상 '그림 그리는 건축사' 로도 유명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주변은 무역의 중심지라는 별칭답게 대형 고층 호텔ㆍ전시장ㆍ백화점이 몰려 있다. 하지만 이 일대를 지나는 사람이면 누구든 한번쯤 눈길을 주게 되는 중층 건물이 하나 있다. '슈페리어' 본사사옥과 전시장이다. 교차로에 접한 전면의 곡선과 원기둥 등 바로크 양식을 빌린 이 건물의 설계자가 바로 강성익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다. 이 빌딩은 주변의 현대적 건물들과 확실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결코 부조화스럽지 않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도 강 회장의 설계작을 찾아볼 수 있다. 역시 석조로 지어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큐아스큐텀 전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슈페리어 빌딩이 곡선으로 부드러움을 살린 반면 아쿠아스큐텀 전시장은 강렬한 직선으로 디자인돼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작품에서 보여지듯 강 회장의 작품 중에는 유독 근세ㆍ중세의 건축 양식을 따온 것들이 많다. 서울 논현동의 '아이캐슬(i-castle)', 논현동 '벤처 캐슬(Venture Castle)', 성내동 '평원빌딩', 양재동 '일우빌딩' 등 석조를 이용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모두 그가 경영하고 있는 한라건축사사무소 작품들이다. 그는 "서구 근대ㆍ중세시대의 중후한 건축 양식을 현대의 양식과 조화시켜 재해석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본업인 건축설계 못지않게 업계에서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건축가들이 그림에도 소질이 뛰어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강 회장의 실력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프로' 수준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의 그림 그리기는 1996년 첫 개인전을 열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두 차례나 입상했고 그룹전에 참여한 것도 100회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세 번째 개인전과 작품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수채화와 유화ㆍ스케치 등이 담긴 그의 작품집을 들여다 보면 문외한의 눈에도 결코 예사롭지 않은 미술실력을 갖췄음을 느끼게 된다. 강 회장은 "삭막해져가는 감성을 되살리는 것이 좋은 건축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 때문에 미술을 시작했다"며 "국내는 물론 인도ㆍ러시아 등으로 열심히 캔버스를 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현재 건축사들의 미술 모임인 한국건축사미술동호회 회장도 맡고 있다. ◇약력 ▦1950년 전남 강성 ▦한양대 건축학과 ▦홍익대 환경대학원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80년 한라종합건축사사무소 설립 ▦서울시 도시건축심의위원 ▦2004년 대한건축사협회 이사 ▦2006년 서울시건축사회 회장 ▦2009~2010년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동서울대 건축과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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