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스토리] 1·16 국채파동과 공매도 사태

1·16 국채파동 당시 발행된 오분리건국국채

위문복

위문복 하나대투증권 e-Business지원부 부부장

“1월 16일 국채 거래를 무효로 한다.”

1958년 1월17일 재무부 장관의 폭탄선언이 나왔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대한증권거래소 결제불능사태를 빚은 이른바 ‘1ㆍ16 국채파동’이다.

파동의 발단은 1957년 9월 국회 제출된 11회 국채발행 동의안과 외환특별세법. “153억 환의 세수 증가를 가져올 외환특별세법이 통과될 경우 180억 환 규모의 국채발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정보가 시장에서 돌면서 시작됐다. 이에 미화증권과 내외증권, 대창증권 등 이른바 ‘매수 5개조’는 ‘희소성=가격 상승’이란 생각에 10회 건국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했다. 반면 ‘5개 주축업자’로 불렸던 천일증권과 태평증권, 상호증권은 외환특별세법 통과 무산 쪽에 베팅, 국채를 대량 매도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국회가 국채를 발행치 않기로 결정하면서 양 측의 명암이 엇갈렸다. 당시 국채가격이 16환에서 40환으로 250% 가량 폭등하면서 매수 5개조가 떼돈을 벌었다. 건옥(공매도)에 나섰던 5개 주축업자는 대규모 손실만 기록했다.

이후 양측의 공방이 시작되면서 국채 가격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5개 주축업자가 재무부를 설득, 국채 발행계획을 부활시키고 자유당 정권이 부작용을 우려해 제11회 국채 발행 안건을 통과시키는 한편 외환특별세법 심의를 보류하자 국채 가격이 반 토막 났다. 국채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매수 측은 가격 폭락을 막고자 무차별 국채 사들이기에 나섰다. 반대로 5개 주축업자는 가격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 물량을 매도하면서 국채 가격이 요동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양측의 잇따른 매수도 공방에 시장은 이상 과열 현상을 보였다. 1958년 1월16일 하루 거래대금이 전년 12월 전체의 50%를 웃돌 정도다. 국내 증권사들은 월말 증거금 부족은 물론 자금 결제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국채 폭락을 막기 위해 무제한 국채 매수에 나섰던 국내 5개 증권사들은 결제 이행 불능 등으로 파산 직전에 몰렸다.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정부가 나섰다. 재무부 장관이 최종 거래일(1월16일) 10회 국채 거래 전량을 취소 조치했다. 매수 주도업자 4곳에 영업 취소를 단행한 데 이어 미결제 대금을 긴급 융자 받은 증권거래소가 대체 결제하도록 하면서 ‘1ㆍ16 국채파동’이 일단락 됐다.

최근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상장회사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조직적 공매도와 악성루머 등으로 회사 정상 운영이 어렵다며 보유 주식을 외국에 팔겠다는 충격 선언을 내놨다. 주식 매각을 밝힌 당시 치솟았던 주가는 이후 사흘 연속 급락했다. 서 회장의 충격 발언은 공매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집권 여당 대표마저 공매도 규제를 언급할 정도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는 공매도 사태에 과거 국내 증시를 극한의 위기로 몰고 간 ‘1.16 국채파동’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증시 역사 안에 사태 해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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