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들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어떤 외국대사가 어느 비공식 모임에서 반농담으로 말하기를 『한국에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이 세가지 있다. 그것은 선거법, 도로교통법, 그리고 건축법이다』고 하였다 한다.
우리나라 선거의 타락상, 잘 지켜지지 않는 교통법규와 대형부실공사 등을 빗댄 것이다. 우선 예절바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외교관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했다는 점이 몹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아니라고 대들 수도 없는 처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비친 모습의 한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직무상 외국인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함께 일해오는 동안 겪어온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금융현실과 관련하여 설명하기 곤혹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로 며칠 전 피치 못할 행사와 오래 전에 했던 약속 때문에 어느 동남아국가를 방문하여 현지의 몇몇 은행의 최고경영자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위기, IMF 자금지원 등에 대해 이야기가 미치게 되었고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가면서 설명도 하였으며 이런 일이 반드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시아지역 전체의 일종의 문화적 문제점 중 하나인 것으로 강변을 하기도 하였는데 상대방들도 어느 정도 맞장구를 치면서 수긍해왔으나 그 속내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으로 느꼈다. 우리 사회는 위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데도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서 어물쩡거리는 경우가 많으며 더욱이 국외자가 따끔하게 직설로 충고라도 해주면 고마워하기는 커녕 먼저 섭섭한 생각부터 앞세우는 좋지 못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앞에 말한 외교관의 세가지 있으나 마나 한 법에 관한 이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최근의 IMF 자금지원과 관련하여 일부에서 주장하는 감정적인 발언도 그렇다고 본다.
남이 잘못을 지적해주면 스스로를 반성하려고는 하지 않고 대책없는 반발부터 앞세운다면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제불능의 상태로 보일 수도 있다. 냉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몫을 하려면 자기반성의 겸허한 자세가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있으나 마나 한」 위의 세가지 법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할 것이다.